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진 Mar 20. 2021

이름이 같은 사람을 좋아했다

영화를 쓰다 4 - 「러브레터」, 이름을 이어준 편지 한 장

 

 유리 우유잔에 한 잔의 눈 덮인 설원이 담겨 있었다. 「설국」처럼 포근하고 「노르웨이의 숲」처럼 희미한 눈결 같은 풍경이었다. 뜨거운 우유 거품 위에 그는 소리 없이 이름을 파묻었다. 유리잔 속에서 올려다보는 바깥 풍경은 홋카이도 어느 작은 마을 오타루의 눈 내리는 하늘 같았다.

 


  
 온통 눈으로 가득한 하얀 허공 아래에서 그는 정말로 그와 이름이 같은 사람을 좋아했다. 처음  애를 좋아하게  것도 이름 때문이었다. 얼굴도 모른  이름을 먼저 좋아했고  이름을 가진 사람을 좋아했다. 똑같은 이름을 가진 '이츠키()' '이츠키()' 사랑보다는 이름과 관련된 일로 따분하게 엮였듯, 그리고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고 느끼지 못한  어슴푸레하게 아무 사이도 아닌 사이가 되었듯 그와 그의 이름도 그랬다.
 같은 이름을 가진  남녀는  권의 소설책처럼 서로 다른 페이지 위에 서로 다른 결말로 아로새겨졌다. 여자는 노르웨이의 에서 피어나는 촛불처럼 와인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기타를 연주하다가 쓸쓸하게 죽어버렸다. 남자는 설국 작은 마을 온천장에 흐르는 투명한 은하수 속에서 여행객이 되어  홀로 차갑고  추억에 몸을 담글 뿐이었다.

 

영화처럼, 그는 정말로 그와 이름이 같은 사람을 좋아했다.

 
 똑같은 얼굴을 가진 '이츠키()' '히로코' 똑같은 이름을 가진 '이츠키()' 사이에 두고도 결국 '이츠키()' 아니라 '서로를 향해' 러브레터를 주고받았다. 이렇게 묘한 줄거리의 영화를 보던 그도 결국 거울 같은 자신의 이름을 사이에 두고 편지에 그린 자화상 너머 자기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좋아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츠키()' '히로코'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그는 영화를 보며 그렇게 믿고 싶었다.  명은 부드러운 우윳빛 산으로 둘러싸인 설원에서,   명은 설탕처럼 새하얀 병동에서 서로 'お元気ですか' 되뇌는  또한 자기 속에 있는  다른 나에게, 혹은 이젠 영원히   없는 사람과 함께 있었던 자신의 과거에게 ' 지내느냐' 묻는 안부일 것이라고, 그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리고  물음에 ' 지낸다' 'わたしわ 気です'라고 답하는 것은 오래전 나를 떠나보내는 배웅임과 동시에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마중일 것이라고, 그는 멀어져 가는 엔딩 크레딧을 멍하니 응시하며 그와 그의 이름도 그러할 것이라고 믿었다.

 


 

 아무도 없는 극장의 스크린 너머로 철 지난 영화가 흘러나왔다. 영사기 속에는 「노르웨이의 숲」에서 별무리와 함께 레코드 판을 들으며 죽어간 자신의 희부윰한 과거를 불태우러, 밤의 밑바닥을 하얗게 가로질러 「설국」으로 가는 자정의 상행 열차 속 그의 뒷모습이 이중노출처럼 희미하게 나타나오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