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온다. 문을 열고 아이들에게 "잘 가."라고 인사하는 찰나에 눈에 눈이 들어왔다. 눈이 오고, 그것이 쌓인다. '과외 가는 길이 쉽지 않겠네.' 나는 중얼거리며 뒷문을 열어 몸을 뺐다.
생각보다 많이 왔다. 길가를 살짝 덮는 형태가 아니라 소보록하게 덮는 형태로, 소금 같은 눈이 내리기도 했다. 나는 계속 걱정하며 엉금엉금 길을 걸어가는데, 저 멀리서 아이들 한 무더기가 보였다. 그들은 깔깔거리면서 웃고 눈 오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때 번뜩 생각났다.
저러면 왜 안 되지?
엉금엉금 기어가더라도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을. 지금은 눈을 즐길 때다. 얼른 휴대폰을 꺼내 눈이 쏟아지고 거리에 쌓이는 상황을 사진으로 찍었다.
어려서는 눈 오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도 싫어하진 않았다. 좋아하지 않아서일까.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한 적은 없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눈 오는 걸 싫어하진 않았다. 그랬다면 당당히 "겨울이 좋아요~"라고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눈을 보는 게 좋았고, 주변 사람들이 흥분에 쌓여 소리를 지르며 분주해지는 것이 좋았다(애들은 눈만 오면 소리 지르고 눈사람을 만들곤 했으니까). 까매진 눈을 보며 가슴 아프다 생각한 게 이때쯤이며, 심부름 다녀오는 길에 하얀 눈을 밟아 뽀드득 소리를 들은 것도 이때다.
그랬던 나인데 어느새 이렇게 변했나? 어른이 되면 눈이 싫어진다고 하던데, 나도 그렇게 된 건 아닌지 곱씹어본다. 그리고 다짐한다. 순수한 마음을 잃지 말자고. 어렸을 때의 마음을 잃어버릴 상황은 자주 나에게 찾아오니까, 더는 말자고. 며칠 전 버스정류장 사건도 그랬다.
"뭐야"
내게 내뱉고는 내 앞의 버스를 향해 가는 여자가 있었다. 그리고는 내 앞의 버스에 대고 물었다. "이거 초등학교 가는 거 아니죠?"
그 말투에는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고 나는 내가 올라탈 버스도 아니면서 출입문 앞쪽에 서 있는 것이 잘한 일은 아니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가는 거 아닌 걸 알면서 버스 기사에게 묻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리고는 돌아서 나와 뒤에 온 버스를 향해 가려는 꼴이, 최종적으로는, 나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도 그 여자가 지나갈 때 말했다.
"뭐야. 타지도 않을 거면서."
그 여자가 뒤에 온 버스를 향해 가면서 나를 휙 돌아보는데 해볼 테면 해 보라는 마음이 들었다. 매일 이유 없이 욕만 먹고 아무 말도 못 하는 내가 답답하고 싫었기 때문이다. 왜 매일 불쾌한 건 나면서도 죄송한 것도 나인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여자는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 없이 뒤에 온 버스에 올라탔다.
엄마를 떠올린다. 둥근달이 뜬 보름날, 엄마는 베란다에서 나에게 소리쳤다.
"저것 봐. 달이 둥글게, 환하게 떴어! 우리 소원 빌자!"
그러더니 엄마는 눈을 감고 정말로 소원을 빌었다.
"우리 딸 좋은 신랑 만나게 해 주세요."
비록 좋은 신랑은 못 만났지만 그때 소원을 빌던 엄마의 웃음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때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참 순수하구나.
순수한 엄마를 닮아갈 것이다. 순수하게 눈을 즐기자. (단, 넘어지면 이젠 뼈 상하니까 조심히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