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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Feb 03. 2021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게 강의를 잘 하는 건가? 


어느 순간부터 수업할 때 강의 이외 나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강의 초반엔 학생을 친구로 여기며 많이도 이야기했다. 오늘은 밥을 뭘 먹었냐면부터 시작해서 어린 시절 이야기, 오늘 내가 느낀 감정 이야기, 읽은 책 이야기 등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했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수업을 나가기가 벅찼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수업만 하고 싶고 수업 내용 이외 할 말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여기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학생과 거리가 생긴 것에 있다. 예전엔 최소한 한 반에 한 명씩 마음을 주는 학생이 있었다. 그래서 그 학생에게 친구가 되고 언니고 되고 친척이 되고 싶어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다 보니 수업 시간에 자연 말이 많아졌다. 너를 위로하기 위해, 너의 축 처진 기분을 달래주기 위해, 기분 좋게 수업하기 위해 온갖 말들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애석하게도 없다. 내 마음이 달라졌나 보다. 학생에게 수업만 전달하고 싶고 그 외 나의 감정을 내보이고 싶지 않다. 우연히 가까워진 학생에겐 가깝게 대하겠지만 일부러 더 다가가고, 친근해지려 노력하진 않는다. 예전보다는. 강사를 하면서 점차 학생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늘었다. 그러면서 점차 변하게 된 것일 것이다. 나의 사생활까지 공유하면서 가까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것을 원하는 학생도 있지만 원하지 않는 학생도 있고, 나와 친근감을 느끼는 학생이 있는 반면 그렇게 해도 멀기만 한 학생이 있는 걸 알았으니까. 그러니 ‘일부러’ 할 필요는 없는 거다.



두 번째는 철저히 나 자신과 관련된 것인데, 그건 바로, 내 인생을 내 스스로 재밌게 가꾸지 못한 것에 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 학생들에게 전할 말이 없는 때가 오면 난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내 시간을 즐겁게 보내지 못하고 있구나.’ 그래서 시간을 내어 미술관에 다녀오고 영화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는 등 새로운 자극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로는 찾아 나설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자 한없이 인생의 재미는 가라앉았고, 작년부터는 사라져버렸다. 딱딱한 수업 분위기를 풀어주고자 수업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은데도 이젠 생각이 안 난다. 내가 뭐하고 살았더라... 내가 무슨 재미가 있었더라...



수업만 하는 것이 강의를 잘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수업만 하면 학생들은 피곤해하고 졸려 한다. 강사라는 건 강의 내용도 잘 전달해야 하지만 학생과 소통을 잘 해야 한다. 그들이 졸려 하면 재밌는 이야기로 잠을 깨워준다든가 조금 쉴 수 있게 여유 시간을 준다든가 하면서 수업을 조절해 나가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난 한동안 그걸 하지 못했다. 냅다 수업만 뺐으니 어느새 돌아보니 진도가 무척 많이 나가 있었다. 아이들은 이걸 다 이해하고 따라온 것일까. 수업 시간에 존 아이는 보지 못했는데, 그렇다면 그건 칭찬받아 마땅한 거 아닌가. 그런데 왜 난 눈치채지 못했을까.



그런 저런 생각들로 오늘은 참으로 많이 학생에게 딴 말을 했다. 내가 읽은 책 이야기, 오늘 낮에 본 넷플릭스 이야기. 그러니 드디어 한 번도 웃지 않던 애가 웃기 시작한다. 순간 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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