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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쑤 Oct 05. 2021

제가 그 컨시어지였습니다만

지금까지 이런 직업이 (분명히 있었는데) 없었다.


컨시어지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호텔 로비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포지션으로 가장 서럽고 외로운 사람들이다. 컨시어지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원망스러워 죽겠는데, 이젠 호텔이 아닌 백화점, 서점에서도 안내데스크 또는 리셉션이라는 용어 대신 컨시어지가 사용되고 있다. 분명히 고유한 의미가 있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사용되면서 국내에서는 컨시어지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어쩌다 보이는 단어이긴 하지만, 여전히 낯선 컨시어지 (Concierge)라는 이 단어를 왜 사람들이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는지 늘 의아했다. 그러니 진짜 컨시어지는 내적 화가 쌓여 이 직업을 알리기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이는 수밖에!


일반적으로 컨시어지는 사람과 서비스를 동시에 지칭하며, 호텔에서 제공되는 부가적인 ‘스페셜서비스  하나로 주로 럭셔리 호텔에서 찾아볼  있다. 때론 유료일 때도 있다. 해외에서는 같은 5,  1 호텔도 컨시어지 서비스가  호텔의 격을 달리할 만큼, 호텔에서도 가장 신경 쓰는 중추적인 팀이다.  틀에서 보자면 프런트 데스크에 속해 있긴 하지만, 프런트 데스크와는 별도로 운영되는 독립된 팀이다. 럭셔리 호텔에서만 찾아볼  있는 서비스인 만큼 손님의 국적, 지위를 불문하고  다양한 게스트를 만날  있어  스펙트럼이 대단하다. 평생을 살며 한번 볼까 말까  정재계 인사들부터 할리우드 스타들도 주요 게스트다. 그렇기에 어떤 주제가 주어져도 당황하지 않고 모두와의 대화가 언제든지 가능해야 하며, 여행 중에 손님이 처한 다양한 상황에 즉각 투입되어야 하기에  다방면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각 컨시어지는 담당하는 손님의 명단이 따로 있다. 컨시어지는 각자 맡은 게스트와 체크인하기 전부터 컨시어지와 수십, 수백 통의 이메일과 전화 통화로 게스트의 여행 일정을 설계한다. 설계 기간은 게스트마다 다른데 짧으면 1주일 길게는 6개월이 걸린다. 성격이 아주 신중하고 세심한 게스트와는 1년 동안 연락을 주고받을 때도 있다. 외국에 있는 친구와 주고받는 현대판 펜팔 같달까? 이렇게 해서 쌓인 게스트의 방대한 데이터가 있기에 게스트는 본인의 니즈와 취향을 재방문할 때, 매번 반복하여 알릴 필요가 없다. 즉, 말하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을 알아서 밥상에 올려준다는 것이다. 낯선 도시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 참 좋지 않은가!


여행 설계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다다르면 게스트의 체크인 날짜가 다가오는데, 곧 펜팔을 주고받던 게스트의 실물을 영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투숙 기간 내내, 컨시어지는 게스트를 전담 마크하며 그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한다. 여행 중 발생할 수 있는 변수에 실시간 대응하며 정해진 일정을 조율하고 게스트의 여행에 빈틈이 없도록 일정 간 연결 고리를 단단하게 끊기지 않게끔 한다. 매끄러운 여행을 완성했다고 하여 컨시어지의 일이 끝난 게 아니다. 컨시어지는 게스트의 여행이란 경험을 총체적으로 관여하고 아우르기에 게스트가 체크아웃한 이후에도 비행기는 잘 타고 집에 돌아갔는지 등을 묻는 심도 있는 애프터 케어까지 완벽하게 마무리 해야한다. 컨시어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하나도 없다.

체크아웃 하면서 게스트에게 받은 땡큐 레터의 일부다.

게스트의 매 순간을 함께 하는 컨시어지는 그들과 가장 강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호텔 내 유일한 포지션이다. 이때 형성된 유대감과 애정은 게스트가 가까운 미래에 이 호텔에 다시 투숙할 수밖에 없게끔 하는 마법을 자주 부리곤 한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컨시어지 한 명을 바라보고 투숙을 다시 한번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컨시어지는 지난번과 또 다른 여행 설계를 준비한다.


게스트가 100명이라면 컨시어지는 100가지의 여행을 설계한다. 내 여행을 컨시어지에게 맡긴다는 건 꽤 근사하고 멋진 일인데. 한번 맡겨보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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