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과 불안의 흐름
2025.11.4 8:01
꿈을 꿨다. 중학교 친구들 다 같이 한 친구가 유학 중인 일본에 놀러 갔다. 친구 어머니 아버지를 꿈에서 만났다. 가끔 티비에서 보는 배우들이었다. 배우인 부모님 때문인지 디자인 관련해서 유학 중이던 친구가 갑자기 배우가 되겠다고 했다. 그때 나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갑자기 라이벌이 생기는 느낌. 피는 거스를 수가 없다고 그랬나. 그래서 배우를 향한 꿈은 접을 수가 없다고. 내가 꿈에서 느꼈던 감정은 뭘까. 그건 단순한 질투심이었나? 다정하고 꽤나 유명한 배우 아빠를 둔 친구에 대한 질투심? 배우가 된다니 갑자기 날 위협하는 것 같아 드는 위기감? 그 자리에 갑자기 올해 결혼한 내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이 함께 앉아있었다. 결혼하고 나서 연락도 하지 않게 되고 만나지도 않는 친구인데, 결혼은 빨리 하지 말라며 갑자기 만류하기 시작했다.
이번 꿈은 왠지 어리석은 내 생각의 집합체인 것 같아서 꿈에서 깬 다음에도 어딘가 많이 찝찝하다.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친구가 배우가 된다고 하니 갑자기 라이벌이 된 것만 같고, 내 자리를 뺏는 것 같고. 남이 더 잘 나게 될까 봐 불안하고. 오랫동안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은 친구가 갑자기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니 안심이 되고. 친구사이가 끝난 게 아니구나 안도하게 되고. 평소에 일이나 친구관계 문제로 내가 알게 모르게 사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거였나? 생각해 본다. 다른 꿈은 빨리도 날아가 없어지더니. 이번 꿈은 왜 이렇게 오래오래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적고 있어서 그런가.
내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제 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여기서부턴 꿈이 아니다) ADHD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우선 어린아이들이 복용하는 약한 약으로 처방 받았다고 한다. 방에서 우울에 빠져있던 친구가 드디어 약을 받아먹기 시작한다 하니 너무 안심되었다. 그러는 한편, 나도 약을 먹는다면 나아질까? 생각했다. 내가 너무 당연하게 내 성격 문제라고 생각해서 자책했던 것들이 알고 보면 정신적 문제가 아니었을까? 하고.
어렸을 때 내가 너무 산만해서 엄마가 나를 정신과에 데려갔던 일이 갑자기 떠오른다. 그때 엄마는 내가 ADHD가 아닌가 우려되어 날 미아 사거리 아웃백 위에 있던 어느 정신과에 데려갔다. 나는 엄마가 나를 '정신병원'에 데려갔다는 이유 하나로 너무 서러웠고, 그날 인생에서 가장 집중해서 ADHD 검사를 끝마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열심히 집중해서 문제를 잘 풀었다. 엄마가 미운 마음에 선생님이 엄마가 언제 좋으냐 물으니 뭔가 사줄 때 좋다고 했다. 엄마에게 계속 화가 나 있었다. 검사 결과는 ADHD가 아니었다.
그런데 사실 당시에 엄마가 맞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닐 수도 있고) 뒤늦게 생각해 보면 보통은 엄마 말이 맞는 것 같다. 엄마도 아직 역시 너무나 미숙한 존재일지라도. 나는 엄마가 간혹 비교하듯 다른 집 딸들처럼 엄마한테 딱히 살갑지도 않고 흔히 말하는 '모녀 사이' 담론에서 우리 모녀는 빠져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엔 엄마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모닝페이지에 엄마라는 단어를 몇 번을 썼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이 마음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본능에서, 아님 결핍에서? 잘은 모르겠지만 할머니까지 3대가 살고 있는 지금 여자들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나는 사람들이 전부 나만큼의 고민과 불안을 안고 사는 줄 알았는데. 아닌 사람도 있을 걸 생각하니 무척 부럽다. 일 할 때 날 만난 사람들은 내가 이런 생각 덩어리에 눌려 사는 줄 전혀 모를 거다. 그들은 내가 아무 걱정 없는 철부지 말괄량이인 줄 안다. 심각한 말을 해도 '에이 안 죽어요~' 내가 맨날 이런다고 나를 따라 한다. 아, 진짜 내가 그랬나? 안 그래도 걱정을 안고 사는데 일할 때만큼이라도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았던 건가? 아니면 연기할 때 생각이란 것에 깊이 빠지면 안 된다고 나 스스로 딱 선을 그어 놓은 걸까? 물론 연기할 때 고민이 내 감정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때가 많이 있지만 현장에서는 누구보다 생각 없어 보인다니 신가 하다. 나도 내 모습을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쓰다 보니 잠이 깬다. 30분 정도 쓰니까 세 페이지정도 쓴 것 같은 기분이다. 어제 우울하다는 말에 언니가 갑자기 나에게 치킨을 보내줬다. 그것도 매콤한 거로. 늦은 밤이라 먹고 자질 못 했다. 방에서 먹으려고 방에다 두고 잤다. 아침까지 치킨 냄새가 난다. 어느 향료보다 달콤한 냄새가 나를 자극하니 이제 다 깨어날 때가 온 것 같다. 내 우울감에 이렇게 즉각적으로 반응해 주는 사람이 있다. J도 우울하다는 나에게 떡볶이를 사주고 오디션 영상을 찍으며 발악하는 나에게 끝까지 잘 맞춰줬다.
오늘 정신 차려야 한다. 내가 어제 질러버린 주식이 떨어지면 난 또 불안하게 될지도 모른다. 노래도 형편없고 연기는 더더욱 형편없는 내 모습을 어제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연습해야 한다. 내 목표를 한 번 더 상기해 본다. 내가 그리는 꿈을 머릿속에 실현시켜 본다.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는 나, 중국어로 공연하는 나, 엄청 멋진 연극을 공연하는 나. 그럼 비로소 오늘 무얼 해야 하는지 명확해진다. 그리고 내가 꿈꾸는 집에서 행복한 나.
잠 다 깼다. 오늘 아침 동료들의 연극 관련 문자에 떠오르는 한 작가의 연극 제목을 끝으로. 오늘 내 모닝페이지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아픈 줄도 모르고 전화해서 찡찡대서 미안해요. 이럴 줄 알았다면 내가 반대로 잘 들어줄걸.
제자리에서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