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둘레 길을 걷다 #17. May 19 (트레킹 15일 차)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는 그쳐 있었다. 온천에서 젖은 옷은 밤새 마르지 않아 따로 담아 배낭을 꾸렸다.
어제 점심을 같이 먹었던 캐나다 여자들과 스코틀랜드 청년은 오늘 고레파니까지 간다고 하고 그들의 가이드 아저씨는 이미 포카라도 돌아갔다고 했다. 안나푸르나 서킷 트레킹을 하는 사람 중에 일정이 짧은 사람들은 또또파니까지만 걷고 버스를 타고 바로 떠나기도 해서 트레킹이 끝나가는 분위기다. 우리는 푼힐 전망대를 들러서 내려간다.
또또파니를 떠나 차도를 따라 걷다가 다리를 건너 강의 왼쪽으로 건너갔다. 걷다가 다시 다리를 건너와서 이번에는 강의 오른쪽에서 걸었다. 길은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고 있었다. 찻길도 있었지만 차도를 가로지르며 나있는 트레일을 따라 올라갔다. 트레일은 계속 오르막이었고 경사도 심했다. 경사가 심한 곳에는 계단이 있어서 올라가기가 편했다. 계단은 돌을 편편하게 다듬어 쌓아 놓았는데 모두 대리석이었다. 히말라야 대리석이 유명하다는 하더니 길에 온통 대리석이 깔려있다.
끝도 없을 것 같은 계단을 올라가 마침내 차도에 올라섰다. 계곡 건너편으로 마을이 보였다. 계곡 저편 마을에 디와의 부모님이 사신다고 한다. 일을 하느라 이 앞을 지나다닐 텐데 부모님 계신 마을에 자주 가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Ghara마을에서 잠시 쉬는데 배가 고프다고 해서 비상용으로 챙겨 와서 여태껏 먹지 않고 가지고 다니던 컵라면 두 개를 부셔 수프를 뿌려 나눠 먹었다. 수프의 매운맛 때문에 입안이 얼얼했다.
Ghara는 꽤 큰 마을이었다. 마을을 벗어나 한참을 가니 조그만 식당이 하나 나왔다.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햇볕이 좋아 젖은 채 넣어온 옷들을 꺼내서 널어놓고 오두막 같은 곳에 앉아 옷이 마르기를, 주문한 점심식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앞으로 사람들이 지나갔다. 캐나다 여자 둘과 스코틀랜드 청년도 간식을 먹고 물을 채워 바로 떠나고, 여자 하나와 같이 다니는 젊은 남자들–전에 사막에서 본 이상한 바지를 입은 남자도 이 무리에 있었다-도 간식만 먹고 지나갔다. 다들 오늘 고레파니까지 가기 위해 길을 서두르는 모양이었다.
점심이 준비되고 점심을 먹고 출발했다. 오늘 우리는 고레파니까지 가지 않고 Shikha에서 머물 예정이었기 때문에 서둘 필요가 없어서 설렁설렁 걸었다. Shikha마을이 나타났다. 마을에도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계단과 길이 굽이굽이 이어졌다. 끝인가 하는 순간 체크포인트가 나왔다. 체크포인트에서 킴이 검사를 받는 동안 디와가 저쪽 산기슭에 있는 파란 지붕 집이 오늘 묵을 게스트하우스라고 알려주었다.
게스트하우스는 마을이 끝나고 고레파니로 가는 길이 시작되는 언덕에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 태양열로 데워진 물로 샤워를 했다. 대부분 트레커들은 지나쳐 가는 동네여서 그런지 게스트하우스에 다른 게스트는 없어서 조용했고 뜨거운 물도 잘 나왔다.
빨래를 널어놓고 내려가 차를 마시려고 하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건물 안에 있는 다이닝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제 오던 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정말 퍼부었다. 이런 빗속에 걸으면 판초를 입어도 금방 폭삭 젖어 버릴 것 같았다. 이 빗속을 걷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우기에 접어든 건 확실한 거 같다. 날마다 비가 온다.
한참을 퍼붓더니 거짓말처럼 비가 뚝 그쳤다. 게스트하우스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길 옆에 홀로 덩그러니 서있는데 손님도 없어서 적막하다. 비라도 쏟아져야 이 적막이 물러설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