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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방인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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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Jan 01. 2024

해방






기다리던 첫 월급이 통장에 들어왔다. 직접 땀 흘리며 일해서 번 돈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통장 잔액을 본 나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고작 50만 원 밖에 안 들어온 거야.?"



같이 일을 시작한 다른 친구들도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큰 기대를 한 것과 다르게 월급은 적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민이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너무 실망하지 말자. 우리 보름밖에 일을 안 했잖아. 그리고 아직은 실습생 신분이니까."



맞는 말이었다. 일을 한 것은 보름밖에 되지 않았고, 아직은 실습생 신분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성민이는 착하기도 했지만 매사에 긍정적인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성민이와 친하게 지내려고 하였다. 나랑은 전혀 반대의 성격을 가진 녀석이었다. 성민이의 말에 친구들도 나도 금방 수긍하였다.



사실 통장에 찍혀있던 액수를 보고 놀라긴 했지만 다른 아이들과 달리 실망스러운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그동안 유복한 가정에서 용돈을 넉넉히 받아왔기 때문에 50만 원 때문에 실망할 일은 없었다. 통장에는 또래 친구들이 상상하기 힘든 금액이 들어 있었다.



월급에 대한 설렘과 실망을 뒤로하고 날은 어두워졌다. 모두가 잠들려는 순간,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웅'이라는 친구였다. 고등학교 시절 투포환을 해서 그런지 덩치가 좋은 녀석이었다.



”얘들아 월급날인데 그냥 자려고.?"

"어디 좋은 곳에서 술이나 한잔 하러 가자. 우리도 곧 있으면 성인이잖아."



악마도 꼬실 만큼 유혹적인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회사 그리고 기숙사 생활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에 대웅이의 이야기는 아이들의 구미를 당겼다. 옆에 있던 '철민'이라는 녀석도 아이들을 부추겼다. 결국 사감과 기숙사 그리고 잠들어 있는 다른 아이들을 뒤로하고 대웅, 나, 성민이 그리고 철민이까지 네 명이 회사의 담을 넘기로 하였다.



평소에 보안팀이 수시로 순찰을 돌기 때문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는 담을 넘는 데 성공하였다.



처음 마주한 회사 밖 풍경은 한적한 시골의 어두운 풍경이었다. 간혹 자동차가 시골길을 황망하게 지나다닐 뿐이었다. 우리가 여태껏 일하고 먹고 자던 공간이 이렇게 외진 곳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다른 한편으론 새삼 이런 곳에서 그동안 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씁쓸함이 엄습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빨리 택시를 타고 도시의 번화가로 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화려한 밤은 순수한 청춘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순수한 청년들에게 도시의 밤은 눈을 즐겁게 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귀를 따갑게 했지만 맛있게 음식과 쓰디쓴 술은 모든 오감을 잊게 만들었다.



그들에게는 이 모든 밤의 풍경이 신세계였다.



처음 느꼈던 걱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도시의 밤은 치명적인 매력과는 반대로 그렇게 길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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