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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방인2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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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Aug 27. 2024

재회






병원 로비의 의자에 기대어 깊은 생각에 빠져 들었다. 한 손에는 낡을 대로 낡아 버린 노트 한 권이 있었다. 그 노트는 박태일 지부장의 것이었다. 사고 당시 차 안에 있었지만 다행히도 훼손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가 나에게 남긴 노트를 통해서 지난 몇 달간 기록해 온 조합활동의 내용들 그리고 동료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내용을 보면 그가 지난 시간 동안 함께 일하던 동료들을 얼마나 아끼며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동료들과 함께 어우러져 일하며, 땀 흘리며 재밌게 일하던 기억이 있었다. 따라서 사측의 불합리한 인사이동과 저임금 그리고 부당해고에 분노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노동조합에 들어간 계기는 성민이의 죽음 때문이었다. 사고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나 원인도 파악되지 못한 채 일찍 수습이 되어버린 것이 석연치 않았다. 그렇게 나는 친구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조합의 일원이 되어 사측과 싸우는 사람이 되었다.



마음속에서는 기약 없이 이렇게 기나긴 싸움을 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다. 혼자 생각에 빠진 것도 잠시 헤어졌던 그녀가 오랜만에 내 앞에 모습을 나타났다. 그녀의 눈에는 걱정과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오랜만이네, 너의 이야기는 주변 동료들로부터 듣고 있었어."

"성민 씨가 그토록 원했던 건 너 자신을 잃어버리고 무모하게 살아가라는 것이 아니었잖아."

"도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거야.?

"성민 씨의 죽음 그리고 그 사고가 너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나는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무슨 영문으로 병원에 온 건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그녀가 나에게 한 말이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렸다. 나는 그녀에게 노트를 보여주며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이게 내가 싸우는 이유야."

"내가 싸우는 이유는 성민이의 죽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난 시간 동안 박태일 지부장 그 사람이 기록해 온 많은 흔적들이 결국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거야."


"그래도 성민 씨가 그토록 원했던 건 네가 이렇게 무모하게 자신을 희생하는 게 아니잖아. 그도 네가 행복하길 바랐을 거야."


"너의 말은 이해하지만 나는 이 싸움을 멈출 수 없어. 이게 내 길이야. 성민이의 죽음은 그냥 넘어갈 수 없어."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을, 그의 마지막 말을 잊을 수 없어."


"그래 넌 변하지 않았구나. 여전히 고집스럽고, 정의로운 걸 포기할 줄 몰라."



나는 마음속이 아려왔다. 하지만 그녀를 보며 슬프게 미소 지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서로를 향한 깊은 감정이 남아 있었지만, 그들은 이제 각자의 길을 가야 할 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느새 병원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병원문을 나서며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그녀는 내가 떠난 빈자리를 한동안 서서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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