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돌아온 집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어제의 시간을 붙잡고 있는 듯 변함없는 풍경 속에서 나는 무거운 짐을 풀고 따뜻한 물에 몸을 맡겼다.
마치 죽음에서 돌아온 탕아처럼, 지난 1년간의 굴곡진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제 졸업식이 얼마 남지 않은 나는 학교에서 이미 '연예인'이 되어 있었다. 친구들은 나를 반기며 가깝게 대해 주었지만,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시선이 엇갈렸다. 몇몇 선생님들은 나를 껴안고 "마음고생 많았어"라며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지만, 다른 이들은 차갑게 나를 외면했다. 그들은 나를 이방인처럼 대했지만, 이제는 그런 시선도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는 같은 길을 걷지 않았을 뿐이다.
졸업식 날, 하늘에서 새하얀 눈이 내려와 나를 맞이했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우리는 앞으로의 미래를 고민했다.
"넌 뭐 할 거야?"
"부사관학과 갈 거야. 이참에 군인이나 돼 보려고."
"난 대학은 안 갈래. 직업학교에서 기술 배워서 큰 사업 할 거야."
"난 대학 진학할래. 우리 부모님이 대학은 나와야 한다고 해서…"
친구들이 돌아가며 자신의 계획을 말하던 중,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뭐 할 거야?"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대답했다.
"나는 법을 공부할 거야.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친구들은 놀라움과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의 반응에 얼굴이 뜨거워졌지만,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졸업식이 끝나고, 몇몇 친구들과 함께 성민이의 묘소를 찾았다. 하얀 눈 속에 꽃을 두고 우리는 조용히 기도했다.
"성민아, 하늘에서 보고 있지?"
"네가 정말 보고 싶어."
"어머니도 널 많이 보고 싶어 하실 거야."
내 두 볼에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너의 뜻을 이어받아, 난 약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될게."
그날 우리는 그렇게 성민이에게 조용한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몇 주 후, 나는 회사가 부도 처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태일 지부장은 병상에서 일어나 여전히 노동조합과 함께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해치려 했던 사람이 잡혔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는 회장이 신뢰하던 비서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던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조차 회장에게 버림받고 후회에 잠겨 있었다. 나는 그의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 부모님께 내 의사를 전했고, 경찰에게 선처를 요청했다. 그의 얼굴은 뜨거운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정말 미안합니다. 회장 곁에서 일하며 잘못된 길로 들었습니다."
그는 반성하는 모습이었고, 이제 노동조합 측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몸은 공장을 떠났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미안한 마음과 부채의식이 생겨났다.
시간이 흘러, 나는 수험생이 되어 독서실과 집을 오가며 지내고 있었다.
책과 씨름하던 어느 날, 노동철 변호사님에게서 반가운 연락을 전해 듣게 되었다. 성민이의 사고가 산재 처리가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임금 체불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회장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정말 고생 많았네. 자네의 힘이 컸어. 항상 건강하길 바라네."
노동철 변호사님의 메시지를 뒤로하고, 나는 다시 독서실로 향했다. 1년 전 박태일 지부장 앞에서 했던 다짐은 여전히 내 마음을 뜨겁게 하고 있었다. 이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또 한 걸음을 내딛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