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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방인2 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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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Oct 28. 2024

노란 리본






그렇게 내 인생의 큰 반환점이 되었던 시간이 흐른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나는 수능을 치르고 지방에서 나름 이름난 국립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에는 부모님의 도움 덕분에 로스쿨에 진학할 수 있었고, 마침내 변호사 시험에도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다음 고민이 남아 있었다. 



법무부 소속 공무원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걸을 것인가. 하지만 마음속에 품어 온 꿈이 있었다. 노동 전문 변호사가 되는 길이다. 검사나 판사가 아닌, 노동자의 편에 서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렇게 순탄하게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지만,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일을 맡아보니 현실은 복잡하고 험난했다. 수입은 많지 않았지만, 두 명의 직원과 함께 최선을 다해 뛰었다. 밤을 새우는 일이 다반사였고, 먼 곳까지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일도 잦았다. 추운 겨울, 천막 농성을 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손을 비비며 노래를 부른 적도 있었고, 사측과 협상 테이블에 앉아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일들은 정말 피곤하고 고된 일이었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보람은 또 다른 힘이 되었다.



기억에 남는 사건 하나가 있다. 그날도 아침부터 어두운 사무실로 한 여성이 찾아왔다. 나이 지긋한 모습에 소박한 옷차림의 그녀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우리 아이가 다쳤어요. 공장에서 밤낮없이 일하다가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던 그녀의 손을 잡으며, 나는 다짐했다. 이 일은 내가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사건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다. 회사는 이미 관련 사고를 축소하고 있었다. 증거가 될 자료는 감춰졌고, 증언을 요청할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닫았다. 하루하루 싸움이 치열해질수록 마음도 피폐해졌다. 이길 수 있을까? 내가 버틸 수 있을까? 그러나 그 막막한 순간에도 떠오르는 것은 어머니의 눈물이었고, 나를 찾아와 손을 내밀던 그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판결 날이 왔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법정에 섰다. 마주 앉은 상대편 변호사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날카롭게 논리를 펼쳤다. 그러나 그날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밤을 새우며 준비한 증거들과, 동료들이 모은 자료들을 하나하나 제시하며, 회사의 잘못을 조목조목 짚어 나갔다.



마침내 재판부의 판결이 내려졌다. 



"원고 측 손을 들어준다." 


그 순간, 법정에서 울음을 터뜨리던 어머니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그녀는 내 손을 붙잡고 "정말 고맙다."며 여러 번 되뇌었다. 마음 한편이 뭉클해지며, 힘들게 달려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내가 걸어온 길이 비록 험난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이 길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그 후에도 사무실은 고된 일의 연속이었다. 여전히 수입은 불규칙했고, 밤늦게까지 서류를 정리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힘겨운 만큼 내게 주는 의미는 컸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 있던 직원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변호사님은 왜 이렇게 힘든 노동 사건만 맡으세요?" 



나는 그 물음에 웃으며 대답했다.


"이렇게 힘들어도, 내가 찾아가고 마주하는 사람들의 감사 인사와 눈물, 그리고 그들의 땀과 기름으로 얼룩진 손이 제가 버틸 수 있는 힘입니다."



어느새 왼쪽 가슴에 달려 있던 노란 리본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힘든 이 길을 걷고 있다. 부끄럽지 않은 변호사로서,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곁에서 함께 싸우고 함께 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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