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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엉 Apr 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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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학의 자리


그 시절 나는 추리소설에 빠져있었다. 괴로운 회사 생활과 반복되는 하루하루에 추리소설만이 유일한 한 줄기 빛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연달아 4-5개 보며 그의 작품에 어쩐지 허무함? 허탈함? 같은 것을 느끼고 있을 때쯤이었다. 무심코 클릭해서 본 다음카페 인기글에서 이 책을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어야 하는‘ 책으로 소개했다. 추리소설을 소개하는 멘트로 그게 얼마나 간결하고 강력했던지. 나는 타이밍 좋게 책을 사주겠다는 회사의 말에 바로 홍학의 자리를 신청했다.


홍학의 자리 -정해연


책장을 열고 다시 덮을 때까지 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홍학의 자리 -정해연


‘아 내가 썼어야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난 후 웃기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런 책이 있는지도 몰랐으면서 ‘망했다.‘, ’선수를 뺏겼다.‘ 같은 우스운 생각을 했다.


영영 내 머릿속에만 있었을 뻔한 이야기를 남의 소설로 접한다는 건 충격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지구상에 또 존재했구나. 진짜 내가 죽기 전에 꼭 쓰려고 했는데. 이렇게 잘 써놨을 줄이야.


내 머릿속에만 있을 뻔했던 포인트를 작가가 알려줄 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 또한 충격이었다. 내가 이걸 못 알아채다니.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한편, 작가의 장치들이 견고하게 짜여진 앞부분을 다시 들춰내 읽으며 짜릿함을 느꼈다. 그래서 이렇게 썼구나. 그래서! 와하하!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길 잘했다, 진짜.






이 책은 나로부터 시작되어 한솔, 해리, 아름, 정표, 부해에게까지 돌아갔다 왔고, 책이 돌아다니는 새를 참지 못한 주선, 성실, 소미는 이북으로 읽었다.


처음 이 책을 다 읽었을 때의 짜릿함을 다시는 느낄 수 없기에 이제는 다른 친구 A에게 주었지만, 도파민 급속충전이 필요한 이들의 일상에 성능 좋은 충전기였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보세요.


홍학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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