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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번째

Let there be light

by 재인


대학생 시절, 심한 불면증을 겪었던 적이 있다.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다

어느 날부턴가 거의 72시간을 꼬박 날을 샜다.

잠이 너무 안 와서 새벽녘 맥도널드에서

창밖으로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명도 낮은 거리, 채도 낮은 사람들의 표정들이

창밖으로 희끄무레 펼쳐지곤 했다.




신은 세상을 만들 때 빛이 있으라 했다고 한다.

신 자체가 빛이라고도 하던데 왜 빛이 있으라라고 말했던 것일까. 태초의 세상이 어둠이었기 때문일까. 빛이란 과연 무엇일까. 외려 온통 빛인 세상에 빛이 있으라 말하면서 어둠을 부각해 존재를 드러낸 것일까.


맥도널드에 갈 때는 그리 밝지 않았다.

그곳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 서서히 밝아져 갔다.

이 세상에서는 무엇인가가 아예 안 보이진 않는다.

그저 그 무엇인가가 잘 보이느냐 제대로 보이지 않느냐의 차이이다. 빛과 어둠은 함께 하면서 존재를 서서히 드러내는 것이다.




불면증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을 때,

얼마간 시간이 지나니 잠을 잘 수 있었다.

잠을 잘 수 없을 때,

빛과 어둠은 서로의 밝기를 조절하는데

나의 세계는 온통 하얀 밤이었고 검은 낮이었다.

경계도 없는 그곳에서 눈만 멀뚱히 뜬 채였다.

드디어 잠을 잘 수 있었을 때 비로소 나는

빛과 어둠이 만들어 내는 존재들을 볼 수 있었다.

비록 기억에 의존하는,

바람 불면 스스스 날아가버릴 것 같은

모래 그림 같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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