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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임스 Aug 16. 2021

행복은 나눌 수록 커지잖아요

근데 왜 너만 있니, 흙 어쨌어.

찢어질 명분이 없던 몬스는 과도한 명분을 가졌다.

아주 그냥 폭풍 성장해버렸다. 너 왜그래, 무슨일이야.

불막창의 기운일까? 잎이 정말 크게 나온다. 돌돌 말린 저 모습도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중간에 너무 쳐지고 꺾이면 돌돌 말린 잎이 펼치다 찢어질까 걱정됬다. 그때 선배집사님들께서 '건들면 끝이다!' 라는 강한 경고를 주셔 참았다. 저 모습으로 1주일의 시간동안 천천히 고개 들고 줄기가 길어진 몬스테라. 어떤 모습일까? 줄기 안쪽의 귀여운 콧구멍! 숫자도 궁금했다. 가드닝은 기다림이라지만 초조하고 설레고 궁금하다.

매일 분무질을 해주며 애타게 기다린 몬스테라의 잎.

진녹색의 어른잎과 달리 여리여리하고 예쁜 연두빛의 어린 잎이 나왔다. 흙까지 싹 마를 정도로 고생한 몬스테라에게 물을 주려고 번쩍 들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그 사람이 본능이 있고 '촉'이라는게 있지 않는가? 뭔가 느낌이 쎄~하다. 아... 이거 설마...?



에이 아니겠지~~~ 얼마 안됬는데~~~~




윗 흙을 살짝 걷어내자 이내 가려진 아니 잊혀진, 잊으려했던 애써 외면하려했던 그 순간이 다가왔다.


바로 몬스테라 분갈이!!! 


아니... 흙은 다 어쩌고 너만 남았니? 겉흙만 걷었는데 흙이 없다. 알고보니 몬스테라 뿌리가 깔망을 들면서 물을 줄때마다 다 빠져버린 것이다. 흙도 거의 없는 이 곳에서 새 잎을 내다니. 너는 도대체.. 와... 이건 뭐 뿌리가 실해도 너무 실해서 빠지지도 않는다. 토분벽에 완전히 붙어버린 우동같은 뿌리를 만졌는데 조금 두렵다. 찢어지고 부러질 것 같다.


심호흡을 충분히... 그리고 몬스터를 원샷하고 조심스레 분리를 시작했다.

와.. 이건 뭐 답이 없다. 그냥 고착이다. 진짜 화분을 다 깨야되나? 몇번을 고민했다. 토분에 붙은 뿌리를 뜯어내고 안쪽의 흙을 물로 빼내도 빠지지 않았다.

2시간의 혈투끝에 나는 그냥 바닥을 깼다. 진작 깰껄...

지친 토분은 입 벌리고 누웠고 그래도 짱짱한 몬스는 그 와중에 뿌리가 하늘로 치솟는다.

배수를 고려해 다양한 크기로 깔아둔 난석까지 다 감아버린 몬스테라. 세입자가 아주 그냥 주인집 살림까지 휘저어버렸다. 뿌리를 20%정도 잘라주고 잠시 한숨 돌렸다. 낮에 시작한 몬스테라 분갈이는 이내 조명이 등장했다.

불막창 같은 짜릿한 몬스테라 분갈이.

아.. 얼마나 했을까? 사진은 커녕 모자란 흙을 채우느라 바빴다. 분갈이로 더럽혀진 곳도 치워야 하고... 더 늦기전에 끝내야 다른 일도 할텐데... 이런 저런 생각에 나는 결심을 했다. 아 이제 분갈이 잠시 쉬자!


올해는 분갈이를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에 조금 무리를 했다. 기존 화분이 직경 20cm라면 이번 화분은 60cm가 넘는다. 사실 말도 안되는 사이즈다. 저렇게 하면 위험하다. 과습 위험에 뿌리의 부담까지. 그래도 성장세가 좋고 줄기가 두꺼운 튼튼한 친구이며 바람과 빛이 좋은 공간 (노지)에 둘 예정이라 과감히 도전! 


일명 '노지스테라' (노지스테라 더 비긴즈)

상토에 펄라이트, 훈탄, 난석, 코코칩, 산야초 등등 내가 넣을 수 있는 좋은 애들은 다 섞어줬다. 제발 이번엔 다양한 친구들과 공존하며 평화롭게 오래오래 거기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듬뿍 담았다. 절대적 애정이다. 애증이 아니다. 사장님 망하라고 고기 더 담아 팔았더니 대박나서 2호점 점장됬다던 어떤 직원 이야기같은 시나리오는 아니고 정말 나는 이 친구가 넉넉한 공간에서 좋은 흙과 다양한 자연소재들과 어울려 살길 원한다.


굵은 난석과 마사로 배수층을 잡아주고 아래쪽은 배수가 좋은 다공질의 화산석을 가득 채워줬다. 워낙 흙 양이 많다보니 웬만큼 섞어선 표나지 않았다. 배수를 돕는 펄라이트 팍팍! 화분은 대형 플라스틱분인데 물 구멍이 작아서 더 뚫어줬다. 입자가 굵은 코코칩을 가득 넣어서 마무리!


그렇게 분갈이는 달을 보며 끝났다. 일주일간 몬스테라는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많아진 흙과 수분량, 장시간 분갈이 몸살에 지칠만도 하고 갑작스러운 구조변경에 혼란할터. 하지만 식물이 흘리는 눈물, 일액현상은 그만큼 물을 잘 흡수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과도한 수분을 잎에서 배출하는 현상이니까. 다만 물방울에 햇볕이 비춰지면 돋보기 효과로 쉽게 탈 수 있으니 바람으로 잘 말려주는게 좋다. 

역시 몬스테라. 금새 적응해 새 잎을 크게 낸다. 적응의 화신이자 성장형 괴물.

저번처럼 깔망 들고 흙 다 버리면 안된다고 경고를 강하게 줬다가 미안한 마음에 알비료를 뿌려줬다.

(몬스테라에 알비료, 이것은 공생과 화합의 상징인가? 전쟁의 서막인가?)

글을 쓰기 전 30리터 넘는 물을 주고왔다. 보통 호스로 물을 주는데 오늘은 주전자를 들었다. 천천히 물 주면서 몬스테라를 바라보고 싶었다. 3리터 주전자에 6번째 물을 받을 때 결국 끝없는 화가 났지만 휴일에 화내고 그러면 안되니까 꾹 참고 다시 줬다.

아름다운 찢잎과 귀여운 콧구멍에 진 녹색 나의 노지스테라. 부디 흙이랑 공생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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