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이상이 되어 고시판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학생 때 고시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공부한 세무사 시험의 경우 회계사 시험과 공부 과목이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에 학창 시절 회계사를 준비했던 경험이 있는 직장인들이 많이 준비하곤 한다. 그야말로 주경야독하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는 가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고시에 임하는 자들이다. 세무사와 겹치는 경력이나 경험은 없지만 정년 관계없이 개업을 할 수 있고 보통은 일반 직장인보다는 돈을 잘 벌 수 있다는 세무사의 장점 때문에 도전하곤 한다. 같은 이유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육아와 병행하며 시험공부를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는 일반 회사는 못 다니겠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그나마 공부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회사를 다녀보니 그래도 전문직이 최고라는 것을 몸소 깨달은 자들이다. 그중에서도 나이가 크게 장애가 되지 않으며 직장인으로서의 단점을 상쇄시킬 수 있는 매력을 가진 세무사에 도전하는 것이다.
어떤 부류에 속하든 모두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꿈꾸는 간절함을 지닌 자들이 나이가 들어 다시 수험생이 된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은 뒤로 하고 피로와 책임감을 등에 잔뜩 짊어진 채 새벽이고 밤이고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그렇게 1년, 2년, 실패하고 또 도전해서 3년, 4년… 실패에 아파할 시간도 아까워하며 다시 힘을 내어 책을 편다. 언젠가는 된다는 희망으로 또다시 펜을 쥔다.
나는 마지막 유형에 속했다. 무엇 하나 뛰어난 재능은 없으나 주어지면 어느 정도는 해낼 수 있는 학습능력을 지닌 것이 나의 유일한 능력이었다. 그래도 학창 시절 공부 못한단 소리는 못 들어보고 살았으니 다시 공부하면 굳어버린 뇌를 금방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나보다 나이 더 많은 주부들, 아저씨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나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인생을 걸고 3년이고 5년이고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는 사실은 몰랐다. 내가 뛰어든 이 고시판은 이십 대 청춘과 삼사십 대 가장과 오육십 대 삶의 마지막 변화를 꿈꾸는 자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인생을 바치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