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그만하고 전문직의 길을 걷겠다고 한 다짐이 무너질까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인터넷 강의를 왕창 결제했다. 1차시험을 위해 들어야 하는 기본강의는 총 다섯 과목, 강의료는 150만원이었다. 기본강의를 다 듣는 데에만 총 4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8월에 시작했으니 겨울이 다가올 즈음에 기본강의를 겨우 다 들을 수 있었다. 다음 해 5월에 1차 시험이 있으니까 연초부터는 1차시험을 위한 객관식 강의를 또 4개월간 들어야했다. 강의만 듣다가 첫 시험을 보러 들어가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또 마냥 불가능한 스케줄은 아니었기에 다음 해 5월 1차 합격을 목표로 타이트하게 공부하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8월 한여름, 본격적인 고시생활이 시작되었다. 직장 그만두고 시험공부를 하는 것이니 일하던 시간 보다 무조건 더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남들보다 더 많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은 회사나 공부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서관에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하루에 강의 서너개 정도 듣고 복습하니 하루가 다 갔다. 분명 듣고 이해했는데 다시보면 내가 이걸 배웠었나 싶을 정도로 내용이 머릿속에서 사라지는게 충격이었다. 졸업 후 제대로된 공부는 안했다고 하더라도 이정도는 아닌것 같았는데… 머리가 굳어버렸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아직 공부 습관이 갖춰지지 않아서 그런거겠지라고 위로하며 하루, 일주일, 한 달, 두 달 시간을 보냈다.
기본강의를 다 들은 12월 겨울이 되고 나서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20대때 공부하던 머리와 체력은 이제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체도 정신도 나보다 건강한 20대와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을. 남들 한 두번 볼때 나는 서너번 보고 까먹으면 또 봐야 남들만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갔다.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면 수험기간은 매일이 좌절과 재시작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공부를 처음 시작한 때에는 아직 처음 배우는 과목이니까 그렇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동안 1차 시험을 두 번, 2차 시험도 두 번 치르고 난 지금 보니 수험기간은 하루하루가 도전이다. 2년을 공부해도 틀리는 문제는 또 틀린다. 그 순간의 자책과 좌절을 견디고 ‘10번 틀리면 11번 보면 되지’ 하고 다시 책을 펴야 하는게 수험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