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렇게 머릿속에 안 들어오는 게 맞나 생각하며 4개월에 걸쳐 기본강의를 다 들었다. 한여름에 시작해 초겨울이 되어 강의가 끝났다. 기본강의를 다 듣고 난 뒤에 드는 생각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데 문제를 푼다고?’였다. 이게 맞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4개월 내내 떠나질 않았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방법을 다시 찾거나 바꿀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5개월 뒤면 1차 시험인데 꼬박 다섯 달 동안 1차 시험용 강의를 수 백개를 다시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2021년 새해를 강의와 함께 맞이했다. 세무사 1차 시험 중 세법과 회계학 과목은 주어진 시간 내 모든 문제를 다 풀 수 없어서 최대한 많은 문제를 빠르게 푸는 스킬이 매우 중요하다. 시험 대비용 강의를 듣고 문제를 풀다 보니 어느덧 1분에 한 문제씩 풀기 위해 미친 듯이 계산기를 두들기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될까? 했는데 되도록 만들기 위해 문제를 풀고 또 풀고 반복하니 가능성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다들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하며 첫 관문인 1차 시험을 대비하고 있겠구나 생각했다.
시험을 한 달 앞둔 4월이 되니 이제는 시험 봐도 붙을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다. 모든 걸 다 알았다기보다는 커트라인은 넘길 수 있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게 또 한 달 동안 지겹도록 문제를 풀고 또 풀었다. 이제는 문제를 훑어보고 시험장에서 풀 수 있는 문제와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별하는 법을 또 연습했다.
하루하루가 참 힘들었는데 뒤돌아보니 어느덧 계절은 한 바퀴를 돌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 수험생활을 시작하여 추운 겨울을 지나고 다시 더위가 찾아오고 있었다. 고시생의 시계는 매일은 느리지만 1년은 참 빠르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생소했던 공부 과목들도 익숙해졌다. 기본강의를 들을 때 몇 번을 반복해도 이해되지 않던 내용들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순간이 오면서 공부가 되고 있구나 느끼기도 했다.
‘나랑은 맞지 않는 건가, 나는 안 되는 건가’ 고민했던 것들이 어느새 ‘할 수 있겠다’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공부할수록 내용은 점점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조금 더 하면 못할 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는 시간이 한다는 모 강사의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