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슈는 쩨쬬를 좋아해> 2화
2021. 11. 2. 화
신산리 마을카페에서 우리는 친구에서 연인이 되기로 했다.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쩨쬬는 나에게 말했다. "너랑은 싸우면 크게 싸울 것 같다." 이 말의 뜻은 너도 나도 주장이 강하기 때문이란다.
보통 쩨쬬가 말을 많이 하는데 내가 따라가기 버거운 경우가 많다. 지식수준을 확연하게 깨닫는다. 그래서 독서량을 늘리려고 한다. 대화 중 겨우 포인트를 잡아 말을 이으려는 순간 금세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버리는 쩨쬬 하여간 신나는 사람이다. 쩨쬬가 남겨두고 간 '작별하지 않는다' 책에서 쩨쬬의 냄새가 남아있다. 킁킁대는 게 변태스러우면서도 내가 누군가를 이토록 그리워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사람의 감정이란 참 아름답다.
쩨쬬를 제주공항에 데려다주고 몇 시간 뒤 육지에 도착한 쩨쬬는 배웅 오시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나와 통화를 했는데 나의 목소리 톤이 한층 높았다며 "슈슈가 기분이 엄청 좋구나"라고 느꼈단다. 그러나 장거리에 대한 걱정, 특히 진솔한 대화는 서로 얼굴을 보고 해야 하는데...... 걱정이 많고 걱정을 먼저 하고 보는 성격이라 쩨쬬는 두려움이 앞서는가 보다.
2021. 11. 5. 금
나는 쩨쬬를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지니고 있었지만 쩨쬬는 지금까지 친구의 감정이었기에 많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나는 하루 바삐 육지로 갔다. 자주 보지 않으면 흐지부지 될 것 같았다.
어제와 오늘 아침의 쩨쬬를 떠올려보면 아주 그냥 귀여워 죽겠다. 내숭도 없고 토라진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나는 뭐랄까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고 지금의 설레는 마음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었다. 그러다 소심한 스킨십을 했을 때 쩨쬬 왈 "어! 만졌어! 이제 돌이킬 수 없어!!!!!!"
2021. 11. 10. 수. 올해 첫눈이 내렸다.
요즘의 낙은 쩨쬬에게 편지 쓰기, 내가 펜을 든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고 나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 쩨쬬이다. 새벽일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안방에 앉아 글을 쓰는 게 기분이 좋다. 해가 뜨기 직전 혹은 날이 흐려 안방 불을 켜야 될 정도의 어둠, 한 페이지 정도는 술술 금방 써 내려간다. 내 머릿속에 무엇이 있는지 꺼내어 볼 수 있는 시간이 좋다.
2021. 11. 14. 일
위태위태, 불현듯 위태함을 느낀다. 메시지 답장이 잘 안 오니 날 배려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휴대폰 보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내가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내가 지닌 아량 그 이상의 관대함으로 마음을 다스려야겠다.
대화의 한계를 느낀다. 사귄 이후로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대화가 이어진다. 통화가 부담스럽다. 사귀기 전 친구일 때의 대화가 더 좋았다. 가끔 전화가 울릴 때의 설렘과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고마움을 느꼈었다.
2021. 11. 16. 화
쩨쬬가 닷새째 감기로 고생 중이다 기침으로 목도 아프고 어디서 계속 나오는 건지 콧물도 자꾸만 나오고 쩨쬬는 아프면 항상 눈이 시리다고 한다. 그래서 우편으로 보내던 편지를 음성메시지로 읽어주었다. 세계일주를 하며 먹었던 음식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네팔의 뚝빠에 관심을 보였다. 우리나라의 수제비 같은 음식인데 요즘처럼 쌀쌀한 날에 뚝빠 한 그릇 뚝딱하면 속이 든든하고 몸도 따뜻해져서 기분이 좋다고 말해주었다. 어제 자면서 땀을 많이 흘렸단다. 잠 옷이 두 벌있는데 한 벌이 더 필요할 듯하여 잠 옷을 검색했으나 프리사이즈는 본인에게 짧단다. 초록색 체크무늬에 강아지가 그려진 건 너무 귀여워서 못 입겠단다. 옷이 불편하다길래 다 벗으면 되지 하니 그래도 좀 가려야 섹시하단다. 원피스 형태의 잠옷은 상하의 구분된 것도 자다 보면 위로 말려 올라가는데 이건 얼마나 말려 올라가겠냐며 그리고 "신혼부부나 급하니깐 입는 거지!!!!!"라고 한다. 얘 머릿속엔 도대체 뭐가 든 것일까? 그래서 내가 골라줬다. "그럼 원피스 사라!!!!!!"
2021. 11. 19. 금
영상통화, 쩨쬬가 안마의자에 앉아 있다. 사람의 손만 못하다며 "슈슈~~"하며 부른다. 돌아오는 주말에 내가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하니 "부들부들한 몸을 만들어서 가도록 노력할게"란 말에 당장 육지로 날아갈 뻔했다. "초속 5cm로 날아갈게" 둘 다 이과여서 이걸 또 계산하고 있다. "1초에 5cm면 1분에 3m, 너네 집까지 직선거리 300km로 잡아도 300km 가려면 100,000분이니까 약 1,666시간, 이걸 24시간으로 나누면 약 70일인데...... 초속 5센티미터가 영화 제목이라 되게 빠른 것인 줄 알았다."
2021. 11. 20. 토
쩨쬬는 언니를 데려와 김장을 마쳤고 온몸에 고춧가루라 씻는다고 했다. 달달한 바디샤워를 사용하니까 매콤 달콤해지겠네? 물으니 씻으면 매운 건 사라진단다. 쩨쬬는 사실을 말하는 사람이다.
2021. 11. 23. 화
사랑의 역사 - 니콜 클라우드 281p. 그녀가 누군가와 사귄다는 사실을 시샘했다면 그것은 앨마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도 그처럼 선택되어 홀로 사랑받고 싶은 소망 때문이었다.
2018년 8월 쩨쬬가 제주도로 여행을 간다며 공항에서 전화가 왔었다. 아직 나에게 좋아하는 감정이 있는 거 같아서 공항에서 출발하기 전에 전화했다며, 거기다 대고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사실대로 아직 좋아한다고 말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는 그때 누군가와 사귄다는 사실에 대한 시샘을 했던가?
친구사이엔 권태기가 없다. 우린 16년 간 그렇게 지내왔다. 일주일에 한두 번 연락하다가 지금은 매일매일 연락을 한다. 그리고 육체적인 사랑이 더해졌다. 연인이다. 관계가 바뀌었으니 권태로움이 생길까? 이성에 대한 종착지가 있다면 나에겐 그 대상이 쩨쬬이다. 누군가에게 새로운 호기심이 생길까? 저녁 8시 30분 전화를 걸었다. 사무적인 말투로 조금만 이따가 다시 전화를 걸겠단다. 조금? 10분? 20분? 얼마가 조금이지? 에어팟을 끼고 불을 끈 채 누워있는데 한참이 지나도 연락이없다. 문득, '배려가 없다. 이해도 안 간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고 안타까운 건 저 두 가지 생각이 드는 동시에 쩨쬬에게 절대적이던 내 마음에 균열이 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