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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 Nov 17. 2023

사랑의 크기가 달라서

<슈슈는 쩨쬬를 좋아해> 3화

2021. 12. 2. 목. 멋진 무지개를 본 날


 쩨쬬가 생일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나는 선물이나 기념일을 챙기는 것에 인색한 환경에서 살아와서 입이 안 떨어진다고 하니 "선물은 내 돈으로 사기는 아까운데 필요한 것"이란다. 쩨쬬가 뜨개질을 하고 있어서 비니를 떠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받아들이며 옆에서 씌워가면서 뜨면 이틀이면 완성한단다.

 퇴근 후 달리기를 하고 집에 갔더니 택배가 하나 와있었다. 비대면 마라톤 대회를 신청했었는데 베스트코스상에 당첨이 되어 에어팟을 상품으로 받았다. 쩨쬬가 크리스마스 때 내려온다고 했으니 깜짝 선물을 해야겠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반적으로 설렘은 사라진다. 내가 살면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인지 누구인지 알았고 그 사람과 함께이다. 이 경우에도 시간이 지나면 두근거림의 감정이 사그라들까? 살결에 아무런 느낌이 없을까? 나아가 인간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실험군인 셈이다.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부디 온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찾길 바란다.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처음이다. 나의 영역에 들어오는 게 용인되는 사람. 나 가진 게 없을 때 베풀던 사람. 마시던 빨대를 건네며 경계를 허물었던 사람. 나를 잃는 게 무섭다며 눈물 흘린 사람. 그렇게 울면서 나도 너 많이 좋아해라고 말해 준 사람. 오늘도 내일도 애틋한 사람


 2021. 12. 4. 토


 새벽 4시 20분 출근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울리는 전화

"안녕?"

 자다가 깨서 어제 돌린 빨래를 널고 슈슈가 일어났을지 안 일어났을지 모르겠어서 배려를 하다가 '자고 있으면 깨우지 뭐'하고 전화를 했단다. 어느 때보다 반가웠고 감동이었다.

 돌아오는 주에 올라갈까? 물으니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좋단다. 그러고 보니 이 말의 유래가 궁금해졌다. 신라시대부터 뽕나무를 심어왔고 고려시대부턴 가구마다 뽕나무를 심게 했다고 한다. 뽕잎이 누에의 먹이가 되기 때문에 생필품을 얻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식수목이었다. 그 뽕나무의 키가 사람보다 크고 잎도 넓어서 뽕나무 밭이 은, 엄폐(?)가 잘 되어 '님도 보고 뽕도 따고'라는 말이 생겼단다.


 요즘 쩨쬬의 농담이 늘고 나를 살짝 갈군다. 나는 진지한 성격이라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이게 진짜인지 장난인지 살짝살짝 상처를 받는다.

"아~ 그냥 10월 31일 이전의 너처럼 나한테 잘해주면 안 되나? 그때의 네가 그립다."

"그때는 친구사인데 상처를 줘서 뭐 하냐?"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관계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인간관계인가 보다.


 2021. 12. 17. 금. 눈


 연락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했다. 메시지를 보내고 내가 즉시 답장을 했는데 너의 답장은 한참 뒤에 오는 게 몇 차례 반복되니 나와의 대화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 서운하다고 했다. 쩨쬬는 내가 메시지로 연락하는 것에 비중을 많이 두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내가 서운한 기분이 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고치겠다고 한다. 네가 나에게 주는 만큼 너도 받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서운한 기분이 들었던 거 같다며 나를 다독여주었다.


 2021. 12. 18. 토. 수평선 위 구름


 짝사랑, 이루어지지 않는, 끝까지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

아련함, 슬픔, 그리움...... 성시경, 써니힐의 노래를 들으니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나의 짝사랑은 이제 없다는 게 무언가를 이루어 냈다는 행복감보다

그때의 아련함이 점점 잊혀질까 그날의 내가 그리워질 것 같다.


 "크리스마스 때 왜 오는데?"

 "...... 너 보고 싶으니까 가지"

 "직접적으로 물어봐야 표현하는구나?"

 "듣고 싶었구나?“

 "그럼."


 2021. 12. 25. 토. 바람과 눈


 바람이 많이 불었으나 쩨쬬는 무사히 착륙했다. 새벽일을 마치고 후다닥 샤워를 하고 공항으로 갔다. 출발 1번 게이트 -도착게이트는 너무 붐벼서 출발에서 픽업한다- 에서 쩨쬬를 태우고 동문시장을 지나 번영로를 타고 표선 바닷가에 도착했다. 바다가 보이는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고 마트에 들러 쩨쬬가 좋아하는 인디언밥과 우유를 사서 집으로 왔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보며...... 훠이 훠이 애들은 가랏!~~


 느지막이 일어나 창 밖을 보는데 겨울왕국이 되었다. 쩨쬬를 안아 들어 베란다로 나가 창 밖을 보여주고 우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 나는 흥얼흥얼 쩨쬬는 가사를 또박또박 정확히 부른다. 눈 구경을 가고 싶대서 집에서 쟁반을 가져와 차에 쌓인 눈을 쓸어내리는데 그새 눈사람을 만든 쩨쬬, 차를 타고 해안도로에 가니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져있다. 바다 위로 눈이 내리고 백사장에 눈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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