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슈는 쩨쬬를 좋아해> 7화
2022. 3. 18. 금
무던해지다. 토시하나 행동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예민했던 시기가 지나간다. 내 머릿속에 쩨쬬에 대한 무수한 정보, 기억, 그땐 어땠을까?, 온갖 잡념들이 눈밭에 굴러 크나큰 눈덩이가 되어가는 중이었는데 내리던 눈이 잦아들고 있다. 시간이 지나며 더 이상 이와 같은 잡념에 에너지를 쏟지 못한다. 대뇌에서 무의미하다고 판단을 내렸나 보다. 마음이 한결 나아진다. 사랑을 할 때 평생을 연애초반처럼 활활 타오를 수는 없다. 그럴 수 있다면 단명할 것이다.
2022. 3. 22. 화. 춥노
일 마치고 집에 오는데 와이래 춥노, 하루하루가 참 지겹다는 느낌, 이게 시간이 좀 빨리 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보니 그날까지가 지겹다. 보통의 지루함 같은 느낌이 아닌 기다림 같은 건데 시간이 무디게 가 지루하다고 느낀다. 완전 장거리 연애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그런데 내가 조금 덜 좋아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별로 상관이 없거나 되려 더 좋기도 했었다. 가까이 있지만 장거리 같은 연애를 했었다. 내 할 일 하고 약속 정해서 만나고...... 내가 선호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이게 참 웃기는 게 쩨쬬가 이런다고 생각하니 정 없어 보이고 섭섭하네
내가 바라던 바를 다 이루었다고 이번 생에 후회가 없는 건 아니다. 지금 생을 마감하면 후회가 없을까? 지금 내 곁에 있는 쩨쬬, 나에게 결혼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았고 사람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떠나가든 그녀의 자유이고 나는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안일하게 안주하고 있다. 쩨쬬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행여나 어긋나더라도 굳건하게 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공부하고 운동해야 한다. 놓지 말고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쩨쬬를 좋아하는 마음, 내 삶에 크나큰 원동력임에 틀림없다.
2022. 3. 25. 금. 태풍급 바람
결항. 제주 - 육지 연애를 하며 언젠가 한 번은 겪을 일이었다.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 속상하고 화가 나는 것인데 천재지변에 대고 하소연한들 들어줄리 만무하고 화풀이 대상을 찾게 된다. 그게 연인, 쩨쬬다. 나는 분명 쩨쬬를 미워하고 있었다. 쩨쬬를 미워할 일이 아닌데 왜 화살이 그리로 향하는지 의아했다. 나는 현재의 상황에 기분이 상한 것인데 엄한 쩨쬬에게 티를 내려했다. 어린아이들이 괜히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듯 나도 그러했다.
2022. 3. 30. 수. 흐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있는 쩨쬬, 인상 깊은 문구가 있다며 수화기 너머로 말해줬다.
"어떤 잘못을 했을 때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
나의 대답은 이랬다.
"쩨쬬,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있어, 근데 너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겠어?라고 물어보면 이건 싸우자는 말 같은데 ㅎㅎㅎ"
책에서 말하는 게 이런 의미가 아니겠지만 쩨쬬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와 이렇게 웃으며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게 좋다고 한다.
내가 연애에 매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을 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연애를 하다 보면 혼자일 때를 아련히 그리워할 때가 있다. 그래서 혼자가 됐을 때의 어떤 맑고 투명한 느낌의 눈이 번뜩 뜨이는 걸 경험하곤 했다. 내가 힘들고 지친다는 건 오버페이스이다. 주말에 육지에 가겠다고 말하고 쩨쬬의 일정에 영향을 줄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건 배려를 가장한 소심함이다. 거절당하는 것에 대해선 쿨한 척하는 거지 상처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떠올리는 건 쩨쬬에게 벽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고 이 벽을 부숴버릴 정도로 나의 갈구함이 쩨쬬에게 가닿지 못한다는 것이다. 쩨쬬를 보고 싶지만 주말에 약속이 있어 안된다고 하니 나는 나의 시간을 보내면 된다. 언젠가는 땡큐를 외치며 속으로 키득키득 웃으며 좋아할 일이다. 나를 놓아줄 때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쩨쬬의 거절이 그립고 고마울 때 가서 후회하지 말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남에도 불구하고 맘껏 좋아하지 못하는 현재가 고통스럽다.
괜찮다. 괜찮다. 지금의 감정을 모두 느끼자!
2022. 4. 1. 금. 구름 / 육지날씨는 좋음
내년이면 서른의 마지막 해이다. 만약 쩨쬬가 결혼을 하자고 하면 나는 뭐라고 답을 할지 궁금해진다. 가끔 왜 사악한 생각을 하는 걸까? 은연중에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내 머릿속에 돌아다니는 생각을 잡아 붙들어 물어보고 싶다.
"왜 나를 기다리게 하니?"
"왜 결정은 네가 하는 거니?"
"네가 결혼을 하자고 하면 나의 대답은 정해져 있을까?"
"내가 결혼을 원하지 않게 된다면 너는 슬플까? 막막할까? 허전할까?"
나보다 똑똑하고 능력 있고 너를 예뻐해 주는 사람이 나타나겠지......
내 머릿속에 돌아다니는 생각은 결국 쩨쬬에 대한 응어리가 아닌 나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 자격지심과 옹졸한 생각들로 스스로를 자멸로 이끄는 행위이다.
2022. 4. 2. 토. 날씨 굿!
주말에 약속이 있다고 하더니 정작 쩨쬬 본인은 모르고 있고 저녁에 형부랑 타이어 갈러 간단다. 오늘 약속 있다고 했잖아 물으니 "아 맞다!"라며 어차피 점심 약속이라 괜찮다며 타이어 갈러 굳이 오늘 갈 필요 없잖아 하며 내일 형부 뭐 하려나 한다. 이번주 올라갈까 물으니 약속 때문에 안된다고 하더니 사실 상관없는 거였잖아? 이유가 있겠지란 생각을 하지만 납득은 안 간다. 굉장히 불쾌하다. 굽실대는 것도 싫고 조심스레 여부를 묻는 것도 싫다. 지금의 감정을 쩨쬬에게 말할 수도 없다. 나의 생각을 공유할 경우 쩨쬬는 듣고 기분이 나빠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감정이 어땠다는 류의 대화는 잘 되지 않는다. 즉 소울메이트인지 잘 모르겠다. 따라서 나는 소울메이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행복할까? 한 달에 한두 번 본다. 5개월이 지났다. 행복한가? 아니.
처음엔 좋았다. 정말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되고 지구의 자전축 같았다. 너무나 큰 사랑은 내가 지닌 도량을 넘어섰다.
말, 내가 사랑한다 말하면 사랑을 듣고 싶었다.
행동, 어느 순간부터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나도 사랑받고 싶었다.
시간, 내가 원할 때 보고 싶었다. 그렇지 못할 땐 그 이유를 알아내려 했다.
돈, 크진 않지만 사소한 거라도 하나 더 주고 싶었다.
내가 해주는 만큼 상대방이 나에게 주지 않으면 섭섭하고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말로만 다 해주고 싶다 더 해주고 싶다고 하지만 다 받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무조건'에서 '조건'으로 변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