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이와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면 또래 아이들이 종종 다가온다. 특히, 동네에서 보기 드문 미니멀한 디자인의 무인양품 자전거, 분홍색과 파란색이 대세인 와중에 단연 눈에 띄는 에르메스 주황색 씽씽이, 육지 포유동물이 아닌 해양 생물이 큼지막하게 구두에 떡하니 박혀있는 미니멜리사 조개 신발을 신었을 땐 더더욱 그렇다.
친구가 춘이 거 타보고 싶나 봐.
빌려줄까?
나의 제안에 춘이는 열에 아홉은 싫다는 반응이다. 내가 춘이를 더 설득을 할 때도 있고, 상대방이 알아서 물러나줄 때도 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읽은 책의 내용이 나에게 통찰을 주었다. 내 물건을 친구에게 빌려준다는 것은 '나눈다'라는 행위인데, 나눈다는 개념의 전제를 짚는다. 애초에 내 물건이 아닌 것을 나눠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눔과 배려를 실천할 수 있는 어린이로 키우기 위해 양육자는 '나눔과 배려'를 강조할 것이 아니라 '내 것'을 소유해 보고, 나의 소유권을 인정받아보는 경험을 충분히 겪어보게 하는 것이 순서상 먼저이고 중요도상 우선이라는 것이다.
'내 것'을 소유하고 인정받아보는 경험.
‘친구한테 자전거 빌려줘도 돼?' 물음엔 이미 '이 자전거 주인은 너니까, 너의 허락이 필요해.'라는 소유의 개념을 담겨 있다.
소유의 경험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난 뒤에야 춘이는 자기 물건을 빌려줄 수도, 기분 좋게 아예 선물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내 것'이 정립되어있지 않으면 주는 행위는 '나누는 행위'가 될 수 없는 것 아닐까? 나누는 기쁨도 묘연해진다.
게다가 나는 춘이의 자전거를 타고 싶어 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읽어주거나, 대변해 주곤 했다. 앞으론 춘이의 마음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상대방에겐)
이 자전거를 타보고 싶구나.
지금은 빌려주기가 어려운데
조금만 기다려줄래?
(춘이에겐)
춘이는 자전거를 빌려주고 싶지 않구나.
맞아, 이건 네 자전거야.
충분히 타고 놀다가 친구에게 빌려줄 수 있어?
나는 춘이가 '지금 상황은 여의치 않지만, 내 욕구, 감정, 생각은 소중한 것이야. 더불어 중요한 것이야.'라는 마인드셋을 기본으로 가질 수 있길 바란다. 함부로 자신의 목소리나 욕구를 숨기고, 감추고, 낮추지 않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무심코 내뱉는 말을 오늘처럼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친구에게 자전거를 지금은 빌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
친구가 내 신발을 만지면 불편한 마음
무턱대고 헐레벌떡
'친구한테 양보해야지'
'친구가 신발 예쁘다고 만지는 거야. 괜찮아' 하지 않기로 한다.
친구를 배려하고 나눔을 실천할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은 나중 일이다. 언제나 춘이의 건강한 마음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