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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애 Apr 05. 2024

입덧, 요망하고 아리송한

Morning sickness

입덧.


임신을 하기 전에는 몰랐다. 입덧. 이름부터 귀엽고 앙증맞지 않은가? 쏙 얼굴을 내밀고 올라왔다 내려가는 두더지 정도의 느낌이다. 대부분의 입덧은 임신 11주에시작해 16주면 사라지니 전문가들은 병이 아니라 일시적 생리 현상으로 판단하는 것일 테다. 그럼에도 이름을 바꿔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입덧의 증상을 그대로 표현한 '구역질-구토질환'은 어떨까? 아무쪼록 무게감을 실어주었으면 좋겠다.


영어로는 Morning sickness. 아침에 잠시 아픈 정도가 아니다. 뱃멀미 직전의 고통이 하루종일 지속된다. 허리를 펼 수가 없다. 데굴데굴 구를 때도 있다. 물 비린내 때문에 물 마시는 것도 힘들다. 평소 사용하던 바디워시에 소량 포함되어 있는 향료에도 구역질이 난다. 신생아용 무색무취의 바디워시로 바꾸고 나서야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샴푸도, 스킨도, 로션, 치약도.


한 번은 지하철을 타고 가다 중간에 내려 벤치에 구부리고 앉아 한참을 있었다. 나의 경우, 입덧이 심할 땐 뱃멀미라기보다는 미주신경성 실신과 아주 비슷한 느낌이었다. 시야가 점점 좁아지면서 구토증상이 올라오고 갑자기 주저앉는다. 그 잠깐 동안의 시간 기억이 사라진다.


입덧은 전체 임신부의 70~85%에서 발생할 정도로 흔하게 나타난다. 전체 임산부 중 50%는 구역질과 구토가 함께 나타나며 25%는 구역만 있고 증상이 없는 임산부는 전체의 25%에 불과하다고 한다. 많은 여성들이 겪는 입덧이니만큼 직장에서는 병가나 휴가를, 나라에서는 입덧 시기를 지나고 있는 여성을 위한 정보제공과 담당 간호사를 배정해 관리해 주었으면 좋겠다.


입덧은 왜 하는 것일까?


현재로선 입덧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대략적으로 태반 형성으로 인한 호르몬의 변화로 나타나는것으로 추정한다고. 전문가들의 여러 가지 의견 중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설명은 진화론적 입장이었다.입덧은 진화의 과정에서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여성의몸에 입력된 생체 프로그램이라는 주장이다.


냉장고가 없던 과거. 임신 초기에는 특히 유산의 가능성이 높으니 탈이 날 가능성이 많은 설탕, 감미료, 카페인, 고기, 우유, 달걀, 생선을 몸이 거부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는 것이다. 음식물 속 나쁜 미생물이나 화학물질로부터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자연섭리라고 생각하니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추가로 입덧이 심할수록 아기의 지능이 좋고 유산의 위험성이 적다는 연구결과 많다는 것도 버틸 힘이 되어주었다.


나의 입덧은 지나갔지만, 어디선가 입덧을 맞이하고 있을 그들에게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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