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카타르항공 전직 승무원으로 제다 비행에 갔을 때 일지입니다.
살다가 그런 날이 있죠. 무언가 잘못 보고, 착각하고, 오늘따라 왜 이러는가 싶은 날들 말이요. 이 제다비행이 딱 그런 날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세심하게 챙기지 못하는 성격이 다분 묻어나는 에피소드이기는 합니다.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당시 비행일지는 다소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마스크 없이 승객 대면하고 서비스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니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비행
2일 오프 뒤에 비행이라, 살짝 감을 잃었습니다.
Have a safe flight!
안전비행도 물론 중요하지만 저에게 safe는 사무장. 부사무장에게 밉보이지 않고 조용히 끝나는 비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나날 속에 찾아온 비행이었습니다.
오늘은 아무 탈없이 비행하고 돌아옵시다.
픽업시간 10시 45분인지 알고, 5분 전에 내려갔습니다.
보통은 10분 전에 내려가는데 오늘따라 룸메이트 둘 다 아침에 일찍 비행을 가버려서 그랬는지 세탁기 돌리고 집안일 하다보니 조금 서둘러 내려갔습니다.
"Jeong, 방금 버스 떠났어요."
시큐리티 아저씨가 아무렇지 않은 듯 말씀하시네요?
숙소마다 전날 비행 스케줄에 따라 픽업 시간이 나오는데, 제가 살던 만수라 숙소는 인원이 많지 않아서 보통 시큐리티 아저씨가 어느 시간대에는 누가 비행가는 정도는 알고 계시다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버스 대기시켜주시는 경우도 있는데, 오늘은 그냥 보내셨어요.
트롤리 끌고 얼른 밖으로 나가서 택시를 잡습니다. 다행히 택시를 금방 잡았는데 미터기를 켜지 않은 체 금액을 부릅니다.
"미터기 켜주세요."
그리고 목적지를 말해야 하는데, 아저씨가 묻습니다.
"테크티컬 빌딩이에요, 공항으로 가요?"
생각할 겨를없이 공항이라고 나왔습니다. 크루버스를 놓쳐서 택시를 탄 적이 처음이었고 저에게 비행의 시작은 브리핑이고, 브리핑이 열리는 테크니컬 빌딩이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비행 = 공항'이라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직진해야 할 택시가 우회하려 할 때 눈치챘습니다.
"여기 아닌데요."
"공항간다면서요?"
비행 앞두고 시간이 생명인 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미안해서 그러는 건지
"잘못 말해줘서 이리로 오게 된거 아닙니까?"
누구 실수 따질 때가 아닌데, 제가 잘못 말해줬기 때문에 저의 실수라고 몇 번을 말하네요.
테크니컬 빌딩 도착
브리핑 정보를 확인하니 뭔가 이상합니다.
브리핑룸 찾아가니 아무도 없네요?
설마 벌써 비행기로 움직인건가요?
제가 제일 일찍 온건가요?
다시 확인하니 제가 브리핑룸 번호를 잘못 봤습니다.
브리핑 룸
크루들은 다 와있는데 이제는 부사무장이 안 보입니다. 브리핑 시간이 15-20분이 넘어가도록 브리핑룸은 크루들끼리 자리 지키던 차에, 부사무장 들어왔습니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일어날 거 같은데?’
브리핑은 조금 늦게 시작한 거 외에는 무난했습니다.
다만 특이점은 승객 수에 적힌 0과 165
그날 따라 이래저래 잘못 보고 헷갈리는가 싶습니다.
이 날의 비행은 사우디 아라비아로 성지순례 간 승객을 도하로 모셔오는게 목적이었던 것였습니다. 즉, 갈 때 비행은 승객이 없이 크루들만 가고, 일명 페리 플라이트(ferry fligh)이라고 합니다. 올 때는 승객 165명을 태우고 돌아오는 거였습니다.
승객없는 비행이라니요?
첫 제다 비행이었던데다 유례없었던지라 설레기도 합니다. 승객이 없으니, 보딩(boarding)과 하기(diembarking) 시간이 줄어들고 제다 공항에 체류시간이 이미 2시간 확보되어 있는 상황이라, 출발은 예정보다 늦었지만 돌아오는 오후 5시 16분 도하행 비행을 오퍼레이팅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제다, 사우디 아라비아
"보딩 한시간 반 딜레이 되었습니다."
부사무장의 안내방송입니다. 승객들 입국 심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건지 출발 시간이 연기되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크루끼리 직항이랑 경유행이랑 왜 금액차이가 나며 우리 항공사는 경유가 있어 환승하는 게 불편할텐데 왜 승객들의 이용률이 높은지에 대한 이야기에 그간 비행하면서 힘들었던 얘기, 이 비행에서 제가 제일 막내여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하다 보니 시간도 금방 가는 듯 합니다. 곧 도하로 돌아갈 거 같습니다.
다시금 들리는 부사무장의 멘트.
"지금시간으로부터 다시금 한 시간 반 딜레이 되었습니다."
소리지를 뻔 했습니다.
랜딩하고 방짝이랑 저녁에 맛있는 거 먹기로 했었는데 보딩시간이 벌써 3시간이 딜레이가 되니 저 언제 도하에 도착합니까. 이때는 살짝 의욕이 꺽이기 시작했습니다. 더욱이 밖은 해가 저물어 어둑해졌습니다. 오늘 아침에 비행 나왔는데 말이죠. 보딩 후 이야기는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