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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Oct 23. 2021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십시일반


봄과 가을이면 인권단체의 활동비를 모금을 위한 일일 호프나 전시회, 콘서트 행사 소식이 자유게시판에 풍성하게 올라온다. 몇몇 열의가 높은 조사관들은 직접 행사 티켓을 들고 과를 돌아다니며 판매율을 높이기도 한다. 많은 조사관들이 기꺼이 인권단체 후원 활동에 참여한다. 현장에서 인권활동가를 만날 때면 “나는 인권으로 호의호식해요”라며 농담을 하지만 사실 반은 진심이 담겨있다. 이런 생각은 내가 선한 사람이라서가 절대 아니고, 인권위는 인권운동가들의 오랜 투쟁 덕분에 만들어졌고, 그들의 헌신적 활동에 기반하여 조사, 교육, 정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인권위 조사관이라면 조금씩 이런 마음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다. 인권활동가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만든 프로젝트가 ‘십시일반’이었다.


2016년도 조사관들의 큰 호응 속에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지금도 계속된다. 십시일반,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밥을 보태면 한 사람이 먹을 만한 양식이 된다. 매월 월급에서 일정한 액수를 공제해서 인권단체 활동가들의 휴식(노동이 아니다)을 지원하는 기금을 마련해 보자는 몇몇 조사관의 제안에 80명이 넘는 직원들이 정기 후원에 참여했다. 각자의 여건에 따라 1만 원부터 5만 원까지 액수를 정했고, 마련된 기금은 인권재단 ‘사람’을 통해 인권활동가들에게 지원되고 있다. 이렇게 조성된 기금은 일 년마다 3~4명의 인권활동가의 쉼을 위해 보태진다. 대상자 선정의 기준은 지원자가 얼마나 잘 쉬고, 잘 먹고, 잘 노는 계획을 준비했는가이다. 일 잘하라고 주는 펀드들은 이미 세상에 넘쳐흐르니까, 잘 놀고, 잘 먹고, 잘 쉬는 것을 지원하는 펀드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먹고, 쉬고 노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임에도 정작 그 권리를 위해 싸우는 이들의 휴식은 잘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인권위 조사관의 작은 마음이 모여 인권활동가들의 부드러운 잠자리가 되고, 비행기 표가 되기도 하며, 한 그릇의 국밥이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십시일반 하는  다른 마음이 얼마  자유게시판에 올라왔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미얀마(버마) 인권활동가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보자는 제안이었다. 조사관들의 모임인 ‘아시아인권모임에서는 2013년부터 태국 북부지역의 메솟 지역의 미얀마 난민 어린이들을 위해 모금 활동을 했고 휴가를 내서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적이 있다. 지금도  당시 메솟에 다녀왔던 조사관이  ‘메솟 보고서 자유게시판에 남아 있다. 보고서 중간,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사진 아래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4 전에 처음 만났을 , 너무도 아이 같아 숟가락질도 제대로   누가 밥을 먹여주어야 했던 치치가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습니다. 혼자서 연필도 깎을  압니다. 우리를 알아보고 웃어주며 졸졸 따라다니던 치치가  금방 그리울 겁니다. 비슷한 또래의 푸후와 리에리 우는 부모를 따라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답니다. 부디 미얀마로 다시 잡혀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모임은 7 가까이 계속되다가 미얀마의 민주화가 진척되고 중간에서 지원사업을 매개했던 마웅저 씨가 한국에서의 난민 지위를 반납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중단되었다.


미얀마에 군부 쿠데타가 벌어진 이후 끔찍한 인권침해 뉴스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아는 조사관들이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미얀마(버마)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인권위 조사관들이 할 수 있는 십시일반이 없을까요? 가을과 함께 풍성하게 전해지던 인권단체 후원 행사들은 코로나 이후 사라졌다. 인권으로 호의호식하는 나 같은 사람의 마음 빚을 조금 갚을 기회도 줄어들었다. 코로나의 힘겨운 터널을 지나가는 요즘 누구라도 조금씩 십시일반의 마음을 갖게 된다. 인권위 조사관들의 ‘십시일반 시즌 2’를 준비해야 할 시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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