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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라 Nov 10. 2020

방콕에서 치앙마이까지, 앉아서 가기.

13시간 동안 직각 의자에서 졸고, 풍경 보고.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이동할 때 보통 슬리핑 기차를 많이 이용한다. 예약하기 전까지만 해도 기차 내 모든 좌석이 침대인 줄 알았다. 빈둥빈둥 예약을 미루다 보니, 남은 건 침대칸 1자리와 수십 개의 앉아서 가는 자리... 진짜 딱 홈페이지를 들어갔을 때의 당황스러움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심지어 연휴가 껴있는 시즌이었는데, 그마저 미리 생각하지 못한 업보는 크게 돌아왔다.

 방콕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아쉬운 대로 기차역 근처를 구경했다. 관광지랑은 거리가 조금 있어서 그런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났다. 개인적으로 이런 곳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그마저도 너무 더워서 포기했다. 저녁 기차라서 남은 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점점 사람들이 바닥에 앉는 거다. 자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심지어 한두 명씩 슬그머니 눕는다. 나도 옆에 살포시 배낭을 배고 누웠다. 물론 8시부터는 경찰이 돌아다니면서 못 눕게 해서 그 마저도 못했다. 잠시나마 누워서 쉴 수 있어서 편했다. 앞으로 13시간을 앉아갈 운명에 놓인지는 전혀 모르고 그저 해맑았다. 마지막으로 화장실도 다녀오고, 야무지게  편의점에서 저녁거리도 샀다. 태국 편의점은 진짜 먹거리 천국이다. 한국이랑 맞먹을 정도! 아무튼 이제 기차를 탈 시간.


 우리는 한 자리 남은 침대자리와 앉아서 가는 자리를 예약했다. 예약할 때만 해도, 동생과 돌아가면서도 있으면 되겠다. 싶었는데, 현실은 많이 달랐다. 우선 침대 칸과 일반 칸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꽤나 많이.... 그래서 직감했다. 아 옮기기는 힘들겠구나. 동생을 우선 침대 칸으로 보내고, 상황이 되면 옮겨가기로 했다. 초반 한 2시간 동안은 넷플릭스도 보고 나름 재밌었다. 밖 구경도 하고, 사람 구경도 하고. 그런데 문제는 앉아서 가는 자리는 4명이 마주 보고 가는 좌석이었고, 역에 하나씩 지나가면서 사람이 계속 탔다. 기차 탄지 3시간 만에 넷이 꽉 차서 가게 되었고, 90도에서 더 넘어가지 않는 의자는 고문 의자처럼 느껴졌다. 중간에 사람이 내리고, 돌아다니고 해서 잠을 자기도 힘든 상황. 그냥 비행기를 탈 걸!! 하고 몇 번을 외쳤는지 모른다. 진짜 나중에는 해탈해서 멍하니 밖만 보고 있었다. 아, 앉아서 가는 칸은 에어컨도 없다. 저 창문을 닫으면 찜통이 되기 때문에 바람이 머리카락을 세차게 치더라도 닫을 수 없다. 진짜, 중간에 내리고 싶다는 생각도 수십 번 했다. 그렇게 졸고, 깨고를 반복하다 보니 해가 뜨기 시작한다.


날이 좋지 않아서 일출까지는 못 봤지만, 기차 안에서 보는 아침 풍경이 꽤나 신선했다. 아 물론 그렇다고 또 저 자리에 타겠다는 말은 아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동생은 자느라 아무것도 못 봤다고! 동생을 만나자마자 내가 겪은 일들을 말하느라 바빴다. 그래도 뭐라도 보고, 기억할만한 게 생겼으니 이 마저도 좋은 경험이겠거니 생각한다. 꽤나 고생스러운 시간이었는데, 지금은 다 미화돼서 나쁘지 않았다는 감정만 남아있다. 웃기게도, 고생한 건 금방 잊히더라. 그래도 다음엔 꼭! 미리 예약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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