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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Sep 13. 2020

글 뭉치를 풀다 - 문학 2

북아트 <풀다>

글 뭉치를 풀다 -문학 2


시집

접으면 북케이스 속에 들어가고 펼치면 이런 모습. 시는 쉽게 바꿀 수 있다.


어두움

 by S.C. Youn

밤이 흐르는 것을 보았나요?

알 수 없는 깊은 곳에서 / 솟아나
내 목까지 감아 돌아 / 적시고 / 출렁이고

몸을 맡기면 / 언덕 저쪽에 닿을 때까지 / 자유인 것을-

깊음은 거리가 아니고 시간이오,
나는 3상한에서 / 깊은 숨을 쉬오.

독일 시골 식당 버섯 맛처럼 / 새로운 발견으로

나를 / 바라보오.



릴케를 생각하며

스위스 라롱의 성 미카엘 암석교회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묘가 있다. 원래 묘는 교회당 공사중 파괴되었고, 다시 조성한 묘라고 한다. 프라하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 국적을 가지고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한 릴케의 묘비명은 이렇다.

"Rose, oh reiner Widerspruch, Lust niemandes Schlaf zu sein unter soviel Lindern."

"장미, 오 순수한 모순, 정욕, 너무 많은 뚜껑 아래서 아무도 잠을 자지 않기 위해"


이 간단하지만 어려운 말에 대해 빌리 네프는 아래와 같은 설명을 했다.

릴케의 무덤에 대한 설명 ; Willi Nef (Schweizer Rosenblatt 1971/12)

"많은 뚜껑이 달린 장미, 즉 훌륭하고 섬세한 향기가 나는 꽃잎이 당신을 잠, 휴식, 구속으로 초대한다. 평화와 구속을 갈망하는 상징이다. 화려하게도 그것은 힘과 생명의 상징이기도하다. 그래서 누구의 잠도 자지 않는 것이 그들의 기쁨이다. 그 안에 부드러움과 힘의 긴장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순수 모순(reiner Widerspruch)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 멋진 장미 구조에서 평화에 대한 열망과 삶의 충만 함을 향한 충동 사이의 긴장이 상징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낭만적인 대화로 릴케가 장미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이라고 말한다. 가시에 찔린 상처의 파상풍으로 죽었다고. 릴케는 죽을 무렵 백혈병을 앓고 있었고, 가시에 찔린 것도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단적으로 가시에 찔려서 죽었다고 하기엔 석연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릴케>하면 반사적으로 <장미>가 떠오르니 릴케를 생각하며 장미꽃 잎에 장미에 대한 시를 써서 모아보았다. 각 페이지를 연결한 방법은 피아노 힌지 스타일이다.(piano hinge binding)


접으면 책처럼 닫아진다.


누군가 널(날) 위해 기도하네 / 금강반야바라밀경

전시회를 관람하러 오는 지인들에게 선물을 준비했다. <누군가 널(날) 위해 기도하네>는 교회 공동예배에서 한 기도문을 모았다. 일반 기도는 모아둔 자료가 없지만 대표기도는 중언부언을 피하기 위해 문서로 작성해 둔다. 기도를 문서로 쓴다니 좀 어색하기는 하지만. 지인들 중에 기독교인들에게는 이 책을 선물했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은 한글 번역본을 편집하여 인쇄하고 책으로 묶었다. 지인들 중에 불교신자들에게 선물했다. 이 책을 만들 때는 고생을 좀 했다. 오탈자 교정보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내가 전혀 모르는 이야기들이 생소한 단어들로 엮여있어서 난감한 작업이었다.

선물로 받은 친구들, 불교신자 친구들이 이 책을 선물받고는 깜짝 놀라며 신기해하기도 했고 기뻐하기도 했다.

(친구야, 나는 네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지, 어떤 신을 믿고 있든지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나의 친구임에 변함없단다!)


<기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한다. 모든 종교 의식에는 기도가 있다.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기도를 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또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누가 그 기도를 듣고, 누가 그 기도를 이루어주는가?

당연히 기도하는 사람이 믿는 神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신, 다양한 다수의 신들은 귀를 활짝 열고 정말 개개인의 기도를 다 듣고 있으며 그 기도대로 되도록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이것은 종교의 신비한 힘이고, 믿는 자마다, 기도하는 자마다, 그 해석이 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기도를 하는 사람만은 그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를 한다. 확신이 없다면 기도를 드릴 이유도 없을 테니까. 기도가 친구에게 하는 무슨 넋두리도 아니고, 자신이 믿는 신에게 간절히 비는 염원인데 이루어진다는 확신도 없이 어찌 그리 정성을 다 하겠는가.

그러니 기도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신앙심을 가지고 기도를 하는 모든 종교인들은, 자신이 믿는 신이 반드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리라고 믿는다.


어떻게 들어주는가.

내 기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기도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신의 영역이고 인간은 감히 그 영역을 넘봐서는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나처럼, 내 기도가 어떻게 나에게 작용하는지, 내가 믿는 신은 어떤 방법으로 내 기도를 받아들이고 이루어주는지, 아니면 어떤 이유로 내 기도를 거부하고 무시하는지 생각해 볼 수는있지 않을까.

이제 나는 그 생각에 골똘하게 몰입한다.


기도를 받는 대상은 신이지만 그 기도가 결과를 얻기 위하여 움직이는 모든 과정은 곧 인간과 인간의 소통이다. 물론 신앙인들은 이런 과정을 신이 다 예비하고 주관한다고 믿는다.

무신론자의 마음까지 쥐락펴락하시는 분이 바로 신이 아니던가. 한 사람의 기도를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그 위대한 신은 아주 작은 한 사람을, 또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아주 가벼이, 또는 아주 깊숙이 흔들어놓고 일의 성사를 주관하신다.

기도가 성사되기 위한 사람과 사람들간의 소통이란 마치 악보의 한 음표가 하나씩 있을 곳에 있어서 제 음을 표현하여 마디를 이루고 아름다운 음악을 완성하는 것과 같다. 절대 음감으로 각 음표를 다 알 수도 있지만, 이웃하고 있는 음표의 소리도 들어봄으로써 그 음을 더 정확히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는 <파>와 <레>를 듣고, <도>와 <솔>을듣고 그 높이를 더 쉽게 감지할 수 있는 것처럼. 또 음표는 그 하나로서는 완성된 음악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나의 기도는 우리를 움직여 이루어지고, 우리의 기도는 나의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그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행동하는 나와 우리가 없다면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기도하면 신이 이루어준다는 것은 너무나도 막연한 믿음이 아닐까? 기도하는 사람이 그 기도가 이루어질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볼 때 신은 기도의 완성을 선물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도만 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기도를 하는 사람은 언제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지는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기도했으니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들, 내가 어떻게 해야 그 기도가 이루어질 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나의 기도가 이루어지는데 신께서 하시는 일은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나를 움직이게 하는 , 이것이 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믿는 신이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면 뚝딱 이루어주는 전설 속의 신이 아니라, 내가 이루고자 정신적인 기도와 육체적인 행동을   힘을 주시는 , 神이란 바로 그런 분이 아닐까!



블루 피리어드

런던 포그 속에서 쓴  수필 몇 점을 모아서 묶었다.  얇은 책이라 팜플렛 바인딩을 했다.

<런던은 늘 젖어있다.>


는개. 나는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는 사물의 거죽을 주르르 씻어 내리지만, 는개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 스며든다는 것을. 런던은 늘 안개에 젖어있고, 는개가 내리고, 그 물방울은 심연 깊은 곳에 고여 나는 늘 습기를 머금고 있다. 감전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생활에서 가끔 경험하는 감전이 있다.
잠깐 찌르르 깜짝 놀라고 안전하게 지나가는 그런 감전을 여러  경험하게 된다. 손에 습기가 있든지, 전기용품의 피복에 문제가 있든지 그런 경우에 감전이 일어난다.
나는 전기 오른다는 말을  때마다 혼동이 온다. 전기와 물이 서로 만나면  달라붙으니 친하다고 해야  , 서로 만나면  큰일 나니 서로 상극이라고 해야  어떤 말이 옳을까? 전기와 물은 서로 친해. 전기와 물은 상극이야. 그깟 말이 무슨 문제가 되랴. 어쨌든 둘이 서로 작용을 한다는  의미가 있는 게지.

사람은 일생에  번쯤 감전될까?
한번에 치명적으로 타버리는 경우도 있을 테고, 가끔 죽지 않을 만큼 전기가 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전기용품의 불량이든 몸에 묻은 습기 때문이든. 피복을  입히고 방수처리를   전기용품은 물속에서도 안전하지만, 불량제품은 아주 적은 습기에도 위험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전기가 통할 때는 어떤 경우일까? <사랑>이라는 고압볼트에 감전될 위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감정이 물기를 듬뿍 머금고 있을  전기가 오르는 상황을 생각해본다. 미친 듯이 사랑에 빨려 들어갈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 늪에 빠진다.
<상대방 사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할  없는 나의 <사랑하는 감정> 빠져드는 것이다. 처음엔 사람을 사랑했다가도 나중엔 감정의 상승작용으로 감정의 노예가 되고, 자기가  사람을 죽도록 사랑하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담 우리들  누가 감히 사랑 앞에서 얼음처럼 차가와   있단 말인가? 없다! 아무도 사랑이란 열병을 식힐 묘약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넋잃고 앓는 수밖에. 죽어도 피할  없이 앓는 수밖에.

가끔은, 내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사랑할 대상이 필요함을 느낄 때가 있다. 내몸 안에서 어떤 갈망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끓는 것들이  그렇듯이   밖으로  끓어오름이 넘쳐흐를 지경일 , 나는 사랑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에게,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나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버릴 그가 내게 필요하다. 그런 , 어느 대상을 만나면 나는 이제 미친 듯이 나를 송두리째 던져버리게 된다.
"우리집 마당에 새가  마리 날아왔어요" "맑스가 주장한 사회주의 사상과 현실에서 실천된 사회주의는 완전히 틀린 거에요" "아를의 햇빛에 미친 사람은 고흐  사람 뿐일까요?" "런던에서 이층버스를 타보셨어요?" ", 나에게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얼마나 삭막하게 살았을까요!”
풀어놓은 이야기 보따리는 마술사의  보자기처럼 비둘기도 토끼도 스카프도 신기하게 술술 내보내고 날은 서서히 밝아오는데, 나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  자체가 누구인지는 상관도 없이 다만  얘기에 취해서 들뜬 가슴을 쓸어 내리고……
사랑이 이렇게 자리잡을 때가 있다.
이런 경우엔 사랑하는 사람과 결별하면  죽을  같지만, 생인손으로 손톱 가장자리가 곪았을때 손톱을 뽑아버리면 머지않아  손톱이 나오듯이, 상처는 서서히 치료된다.
손톱이 없으면 얼마나 불편한가, 그리고 새로 손톱이 나와도 한동안은 차갑고 시리다. 그러나 얼마 동안의 기간이 그렇게 지났는지 의식하지도 못한  건강한 손톱은 벌써  자라있다.

사랑은 그런 . 내가  흥에 취해 남의 잔치에 가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 남의 초상집에 가서  설움에 목놓아 우는 . 사랑에 빠지면, 너무 깊이 빠지면 오히려 사랑하는 대상은 사라지고, 오직  감정만이 파도치다가  자신이  파도에 휘말려 빠져 죽는 .

 몸에 습기가 가득할 , 사랑이 예감되는 사람을 경계해야 된다. 전기가 쉽게 오르니까.




다음은 글뭉치를 풀다 – 문학3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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