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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dos Paul Feb 04. 2024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사카모토 류이치

참으로 촉촉하고 따뜻한 책이다. 책의 저자인 사카모토 류이치는 자신이 어떻게 현재 이러한 모습으로 있게 되었는가를 돌아보며, 지금까지의 파편적인 기억과 시간들을 정리하여서 자신에 대해 보다 더 깊은 이해를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는 일생 내내 자신이 직면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대단히 참여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당대의 사회 분위기에 어울려 데모에 나가길 즐겨하고 고등학교에서 수업 거부를 주도하기도 했다.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는 이러한 사카모토 류이치의 외향적인 모습과, 그가 음악을 공부하면서 깨닫게 된 자신의 내면적인 모습을 병치하여 내용을 전개해 나간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외향적인 언행들은 결국에 폼나 보이기 위해서였다는, 솔직한 내면의 모습을 인정한다. 


    그는 늘 현시대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현재 예술계가, 현 사회가 봉착한 문제점은 무엇인가, 그들의 한계는 무엇인가 등을 고민했고, 시대의 흐름을 읽어가며 그러한 고민과 나름의 통찰을 음악이라는 자신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실천하는 예술가였다.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한 예술가였다. 


전통음악을 팝에 도입한다는 발상을 단호히 거부하는 분위기도 상당히 강한 듯하지만, 나로서는 박물관 속의 민요가 아니라 다양한 것들과 접하며 바로 지금의 음악으로 변화시켜 가는 일이 살아 있는 오키나와 음악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음악이 그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데 조금쯤 공헌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215p.


    사카모토 류이치에게 음악이란 자신의 개인적인 차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많은 이들과 함께 누리고 향유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시작해 YMO를 결성하고 월드 투어를 다니면서 자신과는 다른 음악적 배경을 가진 이들과 얘기를 나누고, 함께 연주하고, 음악을 느꼈다. 특히 월드 투어에서는 나라에 따른, 지역에 따른 관객들의 상이한 반응을 느끼면서 장르의 차이와 음악성을 몸으로 느꼈다. 이러한 실제적이고 감각적인 경험들이 그가 자신의 음악적 성향을, 나아가 음악 자체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요인이었다


   나아가, 그는 자신과는 비슷하면서도 성향이 다른 YMO의 멤버들과 함께 음악 활동을 하면서 음악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를 더 면밀히 이해하게 되었다. 어떤 사물이 혼자 놓여 있으면 별 감흥이 없는 자극일 뿐이다. 그러나 옆에 다른 무언가가 함께 놓이는 순간 두 사물은 서로 대조되기 시작하며 각각의 정체성이 더욱 드러난다. 흰 바탕의 검은 점, 혹은 검은 바탕의 흰 점이 더욱 눈에 띄고 두드러지는 효과라고 해야 하나.


   나와는 다른 누군가가 곁에 있음으로 나의 장점, 단점 같은 나만의 고유한 성격과 정체성이 더욱 잘 드러나게 되는 법이다. 타자를 통해 자신도 잘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타인의 모습을 통해 나를 비춰 보는 것이다. 사카모토도 수없이 스쳐 지나간 많은 이들과 그러했던 것 같다. 그는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베르텔루치 감독과 함께 일한 경험을 회고하며 타자라는 제약이 있었기에 더 훌륭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고, 자신의 음악을 발전시키는 일에 있어서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그는 음악을 통해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졌던 걸까. 책에서 나는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개인이 어떻게 지금의 그로 자라게 되었는지 사카모토의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의 수준에서 보게 되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무엇을 하고 살지 아무런 뜻도, 생각도, 목적도, 야망도 없었다고 했다. 이러한 그의 성향은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며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스스로를 소극적인 인간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늘 스스로 무언가를 먼저 저지른 적은 없었지만, 자신 곁에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런 내가 "나는 음악가올시다"라고 잘난 얼굴을 내밀 수 있는 것은 한마디로 내게 주어진 환경 덕분이었다.
정말 행운과 풍요의 시간을 보내왔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내게 주신 분들은 우선 부모님이고 부모님의 부모님이기도 하고 숙부와 숙모이기도 하고, 또한 수없이 만난 스승과 친구들이며 일을 통해 만난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무슨 인연인지 나와 한 가족이 되어준 이들과 나의 파트너였다. 지난 57년 동안 그들이 내게 부여해준 에너지의 총량은 내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한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빛조차 닿지 않는 칠흑 우주의 광대함을 흘낏 엿본 듯한 신비한 감정에 휩싸인다.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286p.


    자신이 무엇을 할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지, 앞으로 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그는 음악을 통해서 비로소 이러한 불확실성과 무지의 억압 속에서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닐까. 그가 끊임없이 기존의 음악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 냈듯이, 그 자신 또한 여러 상황 속에 자신을 대입해 봄으로써 입체적으로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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