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컴퓨터로 무슨 일을 해?

딸아이의 질문 하나로 정리된 회사일의 핵심: 글쓰기와 말하기

by 에레모스

재택근무 후 집에서 집으로 퇴근하고 가족과 불타는 금요일을 즐기며 저녁을 먹고 있었다.

좋아하는 튀김우동을 후후 불며 맛있게 먹고 있던 여덟 살 둘째가 갑자기 나를 보며 질문을 했다.

“엄마, 엄마는 근데 무슨 일을 하는 거야?”


4학년인 큰아이도 종종 했던 질문이고 내 나름으로는 잘 답변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머릿속에서는 해결이 안 되었는지 마치 처음 하는 질문처럼 너무도 순수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이들이 하는 질문에는 웬만하면 친절하게 대답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미 몇 번 설명한 내용을 다시 말하는 걸 질색하는 나를 대신하여(남편은 이런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다.) 남편이 옆에서 친절하게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아이에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이렇고 저렇고 하며 한참 아이에게 말해준 후 남편은 나를 보며 “사람들에게 일을 알려주고 교육을 판매하는 일이라고 설명해 줬어. 잘했지?” 하고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순두부찌개를 먹던 나 역시 남편에게 “어, 잘 알려줬네” 하고 말하고는 다시 밥을 먹었다. 그런데 아이의 질문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둘째는 다시 물어왔다.


“아니, 그게 아니라 엄마는 컴퓨터로 맨날 뭘 하냐고 묻는 거야. “

그제야 아이의 질문이 ”어떤 직업“이냐가 아니라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뚝딱뚝딱하는 걸로 어떻게 일이 되고 그걸로 돈을 받냐는 의미라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궁금할 만도 했다. 평일 우리 집의 일상을 돌이켜보면 아이가 학교에서 돌봄 교실을 하고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5시 즈음이고, 그 시간은 내가 한창 여전히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느라 여념이 없을, 아니 오히려 6시가 되어도 끝나지 않을 일을 어떻게든 마무리하려고 집중해 있는 가장 바쁠 때이다. 집에 엄마가 물리적으로 함께 있긴 하지만 일종의 ‘사용 가능한’, ‘접근 가능한’ 상태는 아니기에 아이는 아이패드로 좋아하는 포켓몬스터를 보거나 언니와 놀며 6시가 넘어 엄마가 자신에게 돌아올 시간을 기다린다. 그러면서 아마 아이는 일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관찰했던 게 아닐까? 미팅을 한다며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모습을, 전화기를 붙잡고 누군가와 대화하는 장면을, 때로는 말없이 혼자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골똘히 생각하거나 폭풍 타자 치는 모습 등을 말이다.


어느덧 대답하기 귀찮은 마음은 반성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맛있게 먹던 순두부찌개가 식는 것도 외면한 채 나 역시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컴퓨터 앞에서 하고 있는 일을 아이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나는 정말 컴퓨터로 무슨 일을 하루 종일 하고 있는 걸까? 미팅, 제안서, 협업, 교육, 영업 등 내가 하고 있는 여러 업무는 아이들이 알만한 어떤 단어로 표현해내지?


“일단 엄마가 하고 있는 일을 어디에 잘 정리해서 적어. 그런 다음에 그걸 다른 팀 사람이나 고객한테 설명을 해줘. 그런 다음에 다시 질문을 하면 말로 대답하거나 다시 글로 정리해서 답변을 해. 그래서 만나는 말로 설명하면 그게 미팅이고, 글로 적어서 전달하면 파일이나 메일이라고 부르는 거야. “ 이렇게 설명을 하다가 갑자기 정말 뒤통수를 퍽 치는 것 같은 깨달음이 온 나는 흥분해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회사일이라는 게 결국 글쓰기와 말하기가 전부네! 와, 그런 거였어“


아이에게 질문받고 쉽게 말해주려고 노력하기 전까지는 정말 생각도 못해봤던 결론이었다. 직업이 강사라 말을 하고 작가라 글을 쓰는 게 아니었다. 글을 통해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업무를 동료와 매니저, 고객에게 전달해왔고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또다시 말로 외치며 일이 되게 만들어왔던 거였다. 그런 후 말한 걸 정리하기 위해 또 글을 썼고 그 글은 이후 또 다른 미팅과 말하기로 연결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작업이었음을 깨닫는다. 결국 글쓰기가 말하기였던 것이다! 모든 직장인은 글쓰기와 말하기의 달인들이었다!


이렇게 아이를 통해 밥을 먹다가도 나는 큰 배움을 얻었다. 질문의 힘을 또 한 번 느꼈다. 무엇보다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설명하려다 보니 오히려 문제의 본질에 가까워졌음을 알게 된다.

내일이 오면 아이에게 다시 한번 정리해서 말해주고 싶다. 엄마가 컴퓨터 앞에서 하루 종일 하는 일은 말하기와 글쓰기라고. 말하기는 어느 정도 된 것 같으니 글쓰기를 더 열심히 연습해보겠다고 약속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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