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한 달 전쯤 도서관에 들렀다가 아무 생각 없이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을 한 권 빌려왔다. 그리고 지난주 차일피일 미루던 이 책을 빨리 읽고 반납해야겠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첫 장을 넘겼다. 느릿한 전개에 잠시 지루해져서 무심코 페이스북을 열었는데, 갑자기 그의 얼굴이 내 타임라인에 가득… 알고 보니 그가 이번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이다. 허걱… 내게 이런 선견지명이 있었던가?
물론 이번 노벨상 수상으로 그의 작품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전과 같지 않음을 먼저 인정해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나날들]은 올해 읽은 책들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책으로 기억될 듯하다. 주인공 스티븐슨은 영국의 명망 있는 가문의 집사이다. 대저택의 살림을 맡은 집사라는 직책은, 당시 영국 사회를 지탱했던 전통과 관습이 잇따른 세계대전으로 변화의 위협을 받게 되자, 그 존재의 근거를 잃어가게 된다. 그가 평생을 바쳐 일했던 대저택의 새로운 주인은, 마치 전쟁의 가장 큰 수혜자가 미국임을 상징하듯이 그래서 새로운 세계질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되었음을 상징하듯이, 미국의 성공한 사업가로 바뀌었고, 충직하고 품위 있는 집사 스티븐슨은 마치 새로운 챕터의 시작을 준비하듯 엿새간의 휴가를 떠난다. 그 엿새간의 여행이 소설이 풀어내는 이야기의 전부이다. 집사라는 직책에 요구되어지는 자질을 완벽하고 품위 있게 수행하는 것이 유일한 인생의 목표였던 그의 모습은 처음에는 믿음직스럽고 존경스럽다가 점점 애처롭게 느껴지고 급기야는 답답하다 못해 화가 치밀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의 좁은 시야, 무관심성, 그리고 맹목적성은, 이 책의 서평을 쓴 김남주가 언급했듯이, 한나 아렌트의 아이히만을 떠올린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충실했으므로 생각 없이 저지른 (또는 동조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 물을 수 없다고 주인공은 결론짓는다.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세대의 집사에게 주어진 새로운 자질은 ‘주인과 자연스럽게 농담을 주고받는 것’일 거라 믿고 '남아있는 나날' 동안 이 새로운 자질을 갖추기 위해 다시 한번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농담은 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다. 종은 주인에게 농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만만치 않은 도전은 과연 성공했을까? 그 성패를 쉽게 가늠해 보기에는 이 책은 너무나 복잡하고 미묘하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다른 책도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