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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기린 Mar 04. 2022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

50대 여성 M 씨의 첫인상은 아주 단정하고 깔끔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초점 없는 눈,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한눈에도 병이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도 잘 관리된 그녀의 모습은 누군가의 엄청난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M 씨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치매 환자였다. 보통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치매는 60대 이후에 진단되곤 한다. 50대에 발생한 M 씨의 경우는 특별히 조발성 치매라 부르며, 일찍 발생하고 빠르게 진행하는 특성을 보인다.


M 씨는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활기차고 유머러스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강의는 수강 신청 기간이면 맨 먼저 마감되는 인기 수업이었고 인터넷에는 그녀의 몇몇 인터뷰 영상들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51세에 처음으로 기억력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느꼈다. 증상은 빠르게 악화되었다. 1년 반이 지나지 않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얼마 뒤, 가족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M 씨가 집을 나가서 길을 잃고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밤늦은 시간에야 경찰의 도움으로, 맨발로 벌벌 떠는 M 씨를 집에서 10여 km 떨어진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M 씨의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를 돌보기 시작했다. M 씨는 밤낮이 바뀌었다. 밤에는 잠을 자지 못하고 배회했다. 병의 진행 속도는 예상보다 더 빨랐고 약의 효과는 부족했다.


3년쯤이 되어 갈 무렵, M 씨에게서는 이제 예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사회적인 행동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주변 사람을 때리고 물건을 던졌다.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했다. 요양 시설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남편은 M 씨를 입원시키지 못했다. 누구보다 밝고 빛나던 아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을 함께 지내던 어느 날 남편은 M 씨와 함께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병원에 오게 된 것은 이 무렵이었다. 아버지마저 건강을 잃어가고 있다고 느낀 자녀들의 설득 끝에 M 씨를 잠시만이라도 입원시키기 위해서였다. 남편은 내 손을 잡고 M 씨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입원한 M 씨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의사나 간호사를 때리고 할퀴었다. 병동 복도에서는 다른 환자들에게 위협이 되었다. 혼자서는 식사를 할 수 없었고 대소변 역시 마찬가지였다. 병동 인력의 대부분이 M 씨를 돌보는 데 집중되면서 다른 환자의 관리가 어려웠다. 병실에 격리하고 안정제를 주사하는 일이 불가피했다.


어느 날 면회를 왔을 때 M 씨의 남편은 안정제 주사를 맞고 기운없어진 M 씨를 보고는 병동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었다. 사람을 이렇게 팽개쳐 둘 수 있느냐고, 치료진의 의무를 망각한 것이 아니냐고, 너희들이 그러고도 의사이고 간호사이냐고... . M 씨를 돌보는 일에서 최전선에 서 있던 간호진은 갑작스러운 고함을 듣고 적잖이 당황하고 억울해하는 눈치였다. 이미 한 명이 M 씨의 주먹에 얼굴을 맞아 병가를 내고 있었다. M 씨를 돌보는 데 너무 많은 힘과 시간이 필요해, 다들 소진되어 가고 있는 상태였다. 이 이상으로 환자를 돌볼 수는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던 터에 오히려 비난하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허탈한 마음은 당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M 씨의 남편은 퇴원 수속을 밟았다. 그러나 이전과 같이 화가 난 모습은 아니었다. 퇴원 전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마주앉은 자리에서 남편은 내게 병동에 사과를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남편인 자신도 환자를 돌보면서 너무나도 소진되었고 아내과 함께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는데, 그런 마음을 잊고서 여러 환자를 함께 돌보고 있는 치료진에게 심한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퇴원을 하는 것은 결코 병원에 대한 불만이나 원망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결국 자신이 안고 가야하고 자신만이 짊어질 수 있는 짐이라고 생각한다며 남편은 기운 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치매 환자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병원과 시설들에 대해 설명했지만 남편은 손을 저었다. 집으로 갈 거라고, 다시 병원에 오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까지는 어떻게든 혼자서 해 보겠다고 말하며 남편은 M 씨를 데리고 퇴원했다.


남편의 손을 붙잡고 걸어가는 M 씨는 병원에 있을 때보다 조금 더 편안해 보였다. 병동에 돌아가니 남편이 고맙다는 쪽지와 함께 놓아두고 간 과자가 한 상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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