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들의 천국
진료 경력이 쌓이다 보면 자주 보게 되는 환자의 유형이 정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도 의사 개개인이 가진 특성이 진료 영역과 상호작용하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동료들과 비교해 강박증이나 알코올 중독 환자가 유독 많다. 그리고 진료를 할 때에 가장 어려워하는 진단명은 단연코 우울증이다. 우울증 환자를 진료할 때 막히는 부분은 대개 비슷하다.
먼저 나의 진료를 살펴보면, 환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려움을 파악하고, 상담한다. 심리적 지지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우울증이라는 질병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약물치료 계획을 수립한다. 증상이 가볍지 않은 환자는 상담을 받는 것만으로는 호전되기 어렵다. 약물치료와 생활의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너무 우울하고 힘들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몸을 움직여서 생활을 개선해야만 하는, 모순적인 상황인 것이다.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일어나 움직여야 나아진다는 말처럼 무책임한 말이 또 있을까? 그렇지만 회복되고 나서 “제가 그 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라고 이야기하는 환자들을 만나면서, 나는 우울증 환자들에게 힘들더라도 조금씩 행동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꼭 챙기곤 했다. 그러나 이 말을 꺼내기 전에 환자에게 꼭 먼저 사과한다.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무책임하게 들린다면 미안하다고. 그렇지만 호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이런 이야기를 꺼낼 때면 불만스러운 대답이 종종 돌아온다. “선생님은 힘들어도 움직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사실은 제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시잖아요. 섣불리 아는 척 하지 마세요.” 라는 말이 나오면 말문이 막혀버린다. 환자의 이야기가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한동안은 진료 예정 환자 명단에 우울증 진단명이 써 있는 것만 보아도 가슴이 철렁, 진료실에 들어가기가 두려워지곤 했었다.
우울증 환자를 보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된 계기는 뜻하지 않게,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 이었다. 나환자들에게 왜 움직이지 않으냐고 다그치며 내가 여기에 당신들을 위한 낙원을, 보다 나아진 삶을 만들겠노라 약속하는 원장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읽었다. 당신들을 위한 일인데 왜들 그리 시큰둥한지, 왜 당신들의 일에 내가 오히려 더 애달파하는지 원장은 이해하지 못한다.
나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원장이 궁극적으로 나환자들과 같은 운명을 가지고 있지 않은, 타인이기 때문이다. 이미 그들은 원장과 같은 사람을 믿었고 더 나은 삶을 향했지만 배신당하고 추락한 경험이 있다. 이들을 다시 일으키려는 것은 더 큰 상처를 주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섣불리 아는 척 하지 말라는 그 차가운 이야기를 다시 듣는 것만 같았다.
작가가, 등장 인물들이, 기나긴 서사 끝에 내놓은 해답은 사랑이었다. 사람은 결코 상대방을 완벽히 이해하고 완벽하게 공감할 수 없다. 그러나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은 끝없이 가까워지고자 하는 노력이고 이를 통해 나와 타인, 그러니까 ‘당신’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다.
섣부른 공감은 적절하지 않다. 얄팍한 이타주의는 더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지만 똑같은 상황에 처해본 적이 있어야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세상 그 누가 타인의 아픔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정신과 의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항상 같은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어 주는 것이라는 말을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