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식증
정신과 전공을 선택한 뒤로, 주된 치료 과정을 담당하는 의사로서 중환자실에 간 일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는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급한 문제들이 산처럼 쌓여 있기 때문에 정신과 진료는 다음 순위로 밀리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자살 시도를 해서 중태에 빠진 경우에는 일단 생명을 회복하고 난 다음에라야 정신과적 평가와 치료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섬망 관련 진료 의뢰가 종종 오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된 치료 과정의 보조 역할일 따름이다. 그러니까,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의 최우선 해결 과제가 정신과적인 문제인 경우는 정말로 드문 것이다.
성별과 나이만으로도 어떤 문제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환자는 앙상한 팔다리에, 뼈밖에 남지 않은 얼굴이었다. 심전도가 부착되어 윗부분이 풀어헤쳐진 가슴팍에는 갈비뼈의 윤곽이 뚜렷했고 듬성듬성 빠진 머리는 두피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얕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환자의 목 옆으로 관이 삽입되어 영양물질을 공급하고 있었다. 지친 중에도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내게 건넨 환자의 첫 마디는 이랬다. “밥 먹이려고 왔죠? 저 밥 안 먹어요.”
열 여섯 살, 거식증 환자였다. 시작은 1년 반 정도 전의 다이어트였다. 보호자가 보여 준 사진 속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의 환자는 적당히 통통했고 귀여운 표정이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보면서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살찐 모습은 예쁘지 않다며 식이 요법을 시작했다. 조금씩 살이 빠졌고 원하는 사이즈의 옷도 입을 수 있게 되었지만 몸 여기저기에 아직 군살이 많다며 밥을 더 줄여 나갔다. 자신은 왜 SNS 유명인들처럼 마르고 예쁜 몸을 가질 수 없는지, 신경질이 늘어 갔다.
이제 주변에서 너무 말랐다, 핼쑥해졌다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환자가 보기에 자신의 몸은 여전히 군살투성이였다. 음식과 관련해 강박적으로 찾고 또 찾았다.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은 절대 안 먹었다. 식품별 영양소와 열량을 외울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엄격하게 만들어진 식단이 아니면 손도 대지 않았다. 음식을 계속해서 줄여 나가다 보니 이제는 조금만 뭘 먹어도 속이 더부룩했다. 먹는 것이 없으니 대변이 잘 나오지 않았다. 매일 체중을 재고, 몸무게가 조금만 늘면 더 가혹하게 자신을 채찍질했다.
처음에는 식사를 두고 부모와 다툼이 심했지만 가족들도 이제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밥을 먹으면 속이 좋지 않다는 말에 억지로 음식을 먹일 수가 없었다. 환자는 영양 관련 지식으로 무장하고 음식 이야기만 나오면 언성을 높였다. 점점 더 예민해졌고 조금만 신경에 거슬리는 일이 있어도 분노와 울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일상적으로 건네는 말에도 짜증을 냈고 피해 의식으로 가득 차 있는 것만 같았다. 먹으라고 할 수도 없고 먹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부모의 속도 말라 갔다. 환자는 이제 24시간 내내 먹는 것, 살을 빼는 것만 생각했다.
부모는 정신과에 내원해 조언을 구했다. 의사는 소위 말하는 강제 입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자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부모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지금은 외래를 통해 치료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것 같다는 설명이었다. 많은 고민 끝에, 한편으로는 딸이 강제 입원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될까 봐,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병원은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고 우리 딸은 그 정도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으로 단념했다. 딸이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부모 자신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환자가 쓰러졌다. 내원한 응급실에서 심각한 영양 부족으로 인해 혈액 내 전해질 수치에 심한 이상이 생겼고 심장과 신장을 비롯한 장기에도 큰 문제가 있다고 듣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밥을 먹지 않겠다는 환자의 말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말 그대로, 정상적인 사고라고 볼 수 없었다. 단순히 인식이 왜곡되어 있는 것을 넘어 망상에 가까웠다. 의사의 논리적인 설명도 부모님의 눈물 어린 호소도, 망가져 가는 신체 상태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환자에게는 오직 체중 증가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과 식사에 대한 공포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치료의 시점은 이미 늦어 있었다. 환자는 결연하게 음식물 섭취를 거부했고 혈관을 통해 영양 물질을 넣어 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억지로 환자의 몸을 기능시키고 있었지만 장기가 조금씩 더 손상되어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예뻐지기 위한 다이어트의 결말이었다.
먹지 않으면, 살이 빠지고 근육이 빠지듯 뇌도 그 기능을 잃는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된다. 모든 순간에 식사와 체중에만 집착하게 되며 환자는 어느 순간부터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환자는 거식증이라는 질병에 잡아먹혀 버리고, 이제 거식증 그 자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거식증의 치료는 질병을 치료한다는 느낌을 넘어서 거식증을 환자의 몸 안에서 몰아내는 일이라는 기분마저 들게 만든다.
처음 식사를 하지 않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든 거식증의 치료는 밥을 먹이는 것이다. 먹어서 살이 찌고 뇌도 기능을 회복해야 비로소 원인에 대한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다. 심각한 단계로 진행하기 전에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밥을 먹여야만 한다. 영양에 대한 계산은 필요하지 않다. 괜찮은 음식을 적당량 먹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당신이 알던 그 사람, 당신의 자녀는 거식증에 이미 잡아먹혀 버렸다. 거식증을 대함에 있어 타협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