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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기린 Apr 08. 2022

전라남도 여수에서 서울시 종로구까지

공황 발작이란 이런 것

첫 환자, 첫 당직, 첫 정신치료. 


많은 수의 공황 장애 환자들을 진료했지만 공황 장애 또는 공황 발작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이 이야기는 동기 L 형의 사례인데, 편의상 ‘나’로 재구성해 보겠다.


1년차 응급실 당직을 서던 때였다. 정신과 당직은 크게 정신과 입원 병동의 일과 응급실에 내원한 정신과 환자를 진료하는 일을 한다. 많은 정신과 질환이 불면을 증상으로 동반하기 때문에 병동 콜은 대개 환자들의 취침 시간인 오후 10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몰린다. 적절하게 처치를 하고 환자들이 잠들고 나면 남은 새벽은 응급실의 시간이다. 환자가 한 명도 오지 않는 날은 – 아픈 사람이 없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 아침 당직 보고를 작성하기 전까지 병동에서 전화 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잘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날은 아주 드물다. 대개 3-4명, 많을 때는 열 명 가까이 되는 환자가 새벽 응급실에 내원한다. 휴대전화에 응급실 전화번호가 찍히면 가슴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새벽의 평화는 이제 끝난 것이다.


새벽에 응급실에 내원하는 정신건강의학과 환자는 대개 정신과적 응급 상태에 있는 환자들이다. 자살 시도를 했다거나,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지 못해 폭력성을 띠는 환자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112에 전화해 경찰의 도움을 구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환자들이 내원했을 때는 잠은 다 잔 것과 다름없다. 그렇지만 진료다운 진료를 한다는 생각에 피곤함은 덜하다. 다음 날 아침 당직보고를 보낼 때 내가 열심히 일했노라고 동기, 선후배들에게 과장을 섞어서 이야기할 수도 있다.


의학적으로 판단하는 증상의 경, 중증과는 무관하게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들의 마음은 모두 비슷하겠지만, 의사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가벼운 증상으로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의 경우에 김이 빠지는 것이 사실이다. 먹던 수면제가 이틀 치밖에 남지 않아서(심지어 이틀 치가 아직 남아 있어서 날이 밝으면 인근 병원에 충분히 가볼 수 있는데도!) 처방을 위해 새벽 3시에 내원하는 사람, 심지어는 부부싸움을 하다가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어서 오는 사람들의 연락을 받으면 응급실에 내려가서 진료를 보는 시간을 자꾸 미루고만 싶어진다.


불안하다는 연락은 애매하다. 낮에 커피를 많이 마신 사람, 애인과 다툰 사람처럼 의학적으로는 급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도 있지만 정신과적 응급 상황의 전조 증상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불안장애의 대표 격인 공황 장애, 그 증상으로서의 공황 발작은 어떨까? 공황 발작의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는 ‘죽을 것만 같은 느낌과 두려움’이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것이 어떤 느낌인지, 특히 진료 경험이 적은 의사는 알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 날의 진료를 통해, 공황 발작은 나에게 최우선의 진료 순위가 되었다.


전화를 받은 것은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1시쯤 온 환자를 퇴실시키고 올라온 것이 2시가 넘어서였고 의무기록 처리에 시간이 또 걸렸으니 자리에 누운 것은 20분이 채 되지 않았다. 오늘 잠은 다 잤다는 생각, 밤을 샜으니 내일 있는 업무는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새벽에 받는 전화는 암만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병동에 간호사와 환자들이 있고 병원 곳곳에 다른 과 친구들도 함께 당직을 서고 있었지만, 새벽의 한가운데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는 생각은 외로움과 두려움을 함께 느끼도록 만든다.


불안을 주소로 내원한 40대의 여자 환자였다. 빨리 퇴실할 수 있기를, 4시부터는 조금 눈을 붙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응급실로 내려갔다. 특별한 과거력은 없다고 했으니 경험상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을 못 자서 내원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직접 가보니, 예상과는 조금 다른 상황이었다. 내가 수련받은 병원은 서울 대학로에 위치해 있었는데, 환자는 전라남도 여수에서 막 올라온 분이었다. 갑자기 여수라니?


공황 발작 때문이었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고 숨이 가빠 오는데 – 교과서적인 증상 그대로이다 – 죽을 것만 같았다고 한다. 아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 하면서 온 몸이 사시나무 떨 듯이 떨렸다고, 시간이 30분쯤 지나면서 괜찮아졌지만 그 공포를 잊을 수가 없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큰 병원으로 그 밤중에 올라온 것이라고. 또 그런 일이 생기면 견뎌낼 자신이 없다고.


빨리 환자를 보내고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도대체 얼마나 커다란 공포였길래 한밤중에 그 거리를 이동해서 병원에 온다는 말인가. 환자를, 같은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을 수십 수백 명씩 만나다 보면 의사는 둔감해지기 쉽다. 빨리 다시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에는 물리적인 피곤함뿐 아니라 그런 익숙함도 적지 않게 기여하고 있었으리라. 첫 공황 발작 두려움에 떠는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고 향후 대처 방향과 필요한 치료 내용을 안내하는 내내 오늘의 일을 마음에 오랫동안 담아두겠다고 생각했다. 


내게 공황 발작은, 사람을 새벽에 전라남도 여수에서 서울시 종로구까지 오게 만드는, 죽을 것 같은 공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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