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 동네 가장 예쁜 카페의 비밀

단정한 그녀의 탁월한 커피 맛

by 단짠

"도대체 안 되는 게 왜 이리 많아!"

카페 사장이 카랑카랑 천장을 뚫고 올라갈 듯 소리를 질렀다. 자주 있는 일이라는 듯 미스 한은 손님이 남겨둔 찻잔을 치울 뿐 별다른 반응도 없다. 당황한 건 손님인 나뿐이었다. 아무리 손님이 나밖엔 없다고 해도 저렇게 소리를 질러대다니! 볼썽사나웠지만, 아직 식지도 않은 커피를 남겨두고 카페를 나오긴 싫었다.

'저 여자 생긴 건 고상한데 왜 저래? 손님 생각도 해줘야지.'

커피잔에 억울함을 떨구듯 입술을 갖다 댔다.

카페 사장도 민망했는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이때다 싶어서 미스 한 이 지키고 있는 계산대로 걸어갔다. 마치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재빨랐다.

"미스 한, 무슨 일이야?"

"죄송해요. 시끄러웠죠. 제가 미처 사과도 못 했네요."

"그건 됐고. 무슨 일이냐고."

고개를 미스 한쪽으로 들이밀며 물었다.

미스 한은 행주로 계산대 위를 닦다가 멈추고 일발 장전을 하는 듯 침을 삼켰다.

"..."

"아니,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나 입 무거운 거 알잖아. 이 상가에 나만 한 사람 있어? 저렇게 소리 지르는 건 처음 봤는데, 자주 있었나 봐? 아무튼, 걱정돼서 묻는 거야."

"에잇, 몰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요."

"그래, "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미스 한의 말을 잘 들을 수 있게 자리 잡았다. 이런 자세를 자동으로 취하는 자신이 우스웠지만 일단, 귀 기울여야 했다.


"그런 줄은 몰랐네. 항상 고급스럽고, 예뻐서."

미스 한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서둘러 카페를 나왔다. 남은 커피가 덩그러니 카페를지키고 있었다.



퇴근하려 사무실 문을 잠갔지만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카페 앞으로 갔다. 아직 한두 시간은 더 있어야 문 닫을 시간이지만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카페 사장은 보이지 않고 미스 한 혼자서 분주했다.

'좀처럼 카페를 비우지 않던 사람이 얼마나 속상했으면.'

신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는데, 공평한지도 모르겠다. 예쁘고 고상해서 살아온 날도 곱기만 했을 것 같았는데, 그런 사연을 누가 짐작이나 할까.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건 이 년 전이었다. 상가가 지어지고 하나둘 상점이 들어섰지만 이 카페 자리만 비어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가 정문이 아닌 후문 쪽이라 좋은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건물주는 수시로 내 사무실로 찾아와서 재촉했지만, 부동산 중개업자라고 해서 분양도 책임질 수 있는 건 아니라 들은 척 만 척했고 그렇게 거의 일 년 정도 빈 점포로 있었다.

1년을 채우기 한 달 전 더운 여름날 한 여자가 사무실 문을 열었다. 분홍 원피스가 예뻐서인지 그녀가 예뻐서인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어서 오세요, 곱기도 하셔라."를 외쳤다.

고운 그녀는 까다롭지 않았다. 계약을 작정하고 온 사람처럼 빈 점포를 둘러보더니 바로 계약을 했다.

1년을 기다려 온 계약이 한 시간도 안 걸려 마무리됐다.

그녀가 부동산 사무실을 나가면서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 동네에서 가장 예쁜 카페를 만들 거예요. 이 동네 사람 누구도 안 올 수 없게. 모두 와 보고 싶게. 가장 예쁘게 만들 거예요."



그녀는 말한 대로 이 동네에서 '가장 예쁜 카페'를 만들었다. 카페 이름이 '가장 예쁜 카페'였으니까.

물론 이름만큼 실내장식도 예뻤다. 화장실 비누까지도 예쁜 것 중 예쁜 것으로 꾸며진 그녀의 카페는 금방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카페는 손님들로 북적였고 덕분에 상가도 활기가 생겼다. 그녀의 등장으로 동네 작은 상가가 명소가 된 것이다. 상가 사람들 모두가 그녀의 성공 덕을 봤지만, 누구도 그녀의 성공이 그녀가 애써서 얻은 것으로 여기진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예쁘고 운도 좋고, 돈도 많아서 부모덕으로 카페를 차렸을 거라 짐작했다. 상가 사람 누구도 그런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내 생각과 다르지 않았을 거다. 나처럼 손대는 사업마다 말아먹는 남편 만나서 돈 버느라 입에 거품 물 듯 일해야 하는 삶과는 다를 것 같았다.

나와는 다른 고운 그녀가 불편했다.

불편했지만 '가장 예쁜 카페'라는 이름답게 예쁠 뿐만 아니라 편안하고 커피 맛도 좋아서 자주 그녀의 카페에 가곤 했다. 그런데 그녀가 곱게 살지 않았다니.

나는 지금까지그녀를 운 좋은 여자라고 치부해 온 게 미안했다.

나처럼 애쓰고 살아온 그녀가 안쓰러워서 그녀를 바라보듯 카페를 바라봤다. '가장 예쁜 카페'라고 쓰인 분홍 간판이 슬퍼 보이긴 처음이다.

그녀의 커피가 깊은 맛이 난 것도 그녀의 케이크가 탁월하게 달콤했던 것도 그녀의 카페가 늘 생기 있었던 것도 무엇보다 그녀가 항상 단정하고 다정했던 이유가 기다림이었다니.


그녀가 7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아빠와 둘이 살게 됐다. 그녀는 엄마를 그리워했지만, 엄마는 재혼하시며 다른 도시로 떠났고 그 후 연락조차 없었다. 그녀는 그리움이 원망이 되어가는 만큼 철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세상에 혼자 남겨진 그녀는 생계를 위해 아버지가 하시던 슈퍼마켓을 떠맡았다. 아무 준비 없이 시작된 고된 삶은 11년간 그녀를 밤낮으로 일하게 했다. 슈퍼마켓이 편의점이 될 때까지 일하자 제법 목돈이 모인 그녀는 어른이 된 후 처음으로 안도하게 됐지만, 안도와 함께 그리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움은 숨어 있을 뿐 사라질 수 없는 거였다.

그녀를 떠났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수소문을 했고 엄마가 블로거로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엄마는 예쁜 카페를 찾아가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취미가 있었고 엄마의 카페 사진들은 SNS에서 꽤 유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편의점을 정리하고 엄마가 사는 동네로 찾아와 '가장 예쁜 카페'를 차린 거였다. 이름마저도 '가장 예쁜 카페'를.

그러나 엄마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아무리 카페를 예쁘게 꾸며도, 아무리 맛있는 원두로 커피를 내려도, 아무리 달콤한 케이크를 만들어도. 엄마는 찾아오지 않았다.

매일 커다란 카페 창으로 지나가는 엄마 또래의 사람들을 볼 때마다 설레고 실망하고 다시 기다리고. 그러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날은 오늘처럼 소리를 질렀다.



난 왜 이 모습을 2년 만에 봤을까.

내일도 카페 문을 열고 한 사람을 기다릴 그녀를 생각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지만 집에 갈 때가 지났다는 듯,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춤추기 시작했다.

"어, 엄마야. 그래 치킨 시켜. 반반. 아빠는? 아직도 안 오셨어? 일단 끊어. 금방 가."

생긴 것도, 살아온 삶도 다르지만 혼자 사무실 불을 끄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과 엄마를 기다리다 홀로 집으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이 닮아있는 밤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상가를 찾아오기도 전에 가장 먼저 문을 열고 사람들이 모두 떠난 후에야 문을 닫는다. 아마 오늘 밤도 가장 늦게 문을 닫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 오전 7시면 어김없이 카페 문을 열겠지?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문을 활짝 열겠지.


'기분이다. 내일은 내가 첫 커피를 팔아줘야겠어. 비싼 수제 케이크도 사지 뭐.'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실 거다.


'간절함이 탁월한 태도를 만는다.' 한문장을 쓴 후 문장과 어울리는 이야기를 상상해 봤다.
상상 속 그녀가 행복해졌음 좋겠다. 다음 이야기를 상상해 볼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연애, 그 이유 없음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