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도 술도 잘 먹는 누나가 변했다. 아니, 변하고 있다. 잘 먹고 잘 웃고 마음이 예뻐서 ‘밥 잘 먹는 예쁜 누나’였는데,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하지?
누나와 밥 먹고 술 먹는 시간이 즐거웠다. 이제 무슨 낙으로 지내야 할까. 나는 누나의 변심이 서운하다. 항상 차고 다니던 가장 아끼는 시계를 잃어버렸을 때 느낀 감정과 비슷하다. 속상하고 허전하다. 아니, 그걸로는 부족하다. 지금 나는 아주 소중한 걸 잃어버린 애틋한 심정이다.
누나가 달라지면 우리 사이도 달라질 것 같다. 오랫동안 유지한 둘만의 행복 루틴에 위험 신호가 감지됐고, 그 신호가 유쾌하지 않은 변화를 예고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 그만큼 그녀와 같이 밥 먹고, 술 한잔하는 시간이 나는 행복했다.
제품 사양 변경 신호가 뭔데?
왜, 누나는 변심했을까? 나는 그녀의 변화를 관찰하기로 했다. 내가 지금까지 봐온 누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저녁 식사를 한 후라도 누군가 만나자고 하면 기꺼이 소주 한잔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퇴근 후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는 혼자 마시는 술도 즐겼다. 자신도 타인도 밥과 술로 위로할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 내가 아는 누나다. 그런데 두 달 전부터 누나는 모호한 말이 잦아졌다.
“내 삶이 다른 신호를 울리고 있어. 더는 청춘이 아닌 몸과 아직도 청춘인 마음 사이에 조율이 필요하다고. 지금까지처럼 지내면 10년 뒤 더 멋진 나는 없을 것 같아.”
최근 들어 부쩍 모호한 말이 잦아졌지만, 그런 말 할 때마다 ‘그 유명한 갱년기가 시작됐나?’라고 의심할 뿐, 차마 자세히 묻지 못하고 대충 넘기곤 했다.
“누나가 뭐가 문제라고 심각해? 중년되면 술 못 마셔? ”
“물론 난 영원한 애주 가지. 술 얘기만은 아냐.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아. 자주 삐끗거려. 감정도 체중도 예전보다 예민해. 그런 불편이 반복되는 건 제품 사양 변경 신호 같은 것 아닐까?”
“업그레이드할 때 같은 거?”
“맞아.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아져. 이십 대, 삼십 대 캬~ 젊을 땐 마음과 몸을 막 써도 회복력이 빨랐는데, 쉰을 넘기니 몸도 마음도 약해지나 봐. 잘 돌봐달래. 그러니 사양 변경이 필요하지 않겠어?”
“에이, 누난 아직 한 창이야.”
“응, 나 아직 한창이야. 예전보다 더 열정적이야. 내 꿈도 찾았고! 그래서 내가 더 소중해졌어. 뭔가 새로운 삶, 진짜 나를 찾아갈 때인가 봐.”
난 누나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심각해지는 분위기가 싫어서 잔을 들고 외쳤다.
“자, 우리의 위대한 인생을 위하여!”
우리는 언제나처럼 잔을 부딪쳤지만, 그녀가 말하는 '진짜 나'와 '새로운 삶'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진 않았다.그냥 내 곁에 있는 누나가 좋았다.
그러나 누나의 모호한 말들은 넋두리가 아닌, 예고편이었다. 누나는 누나가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해 행동하기로 했고, 거침없이 닻을 올리고 살고 싶은 삶을 향한 항해를 시작했다.
나를 두고 혼자 멀리 가진 않겠지? 누나가 바라는 다른 삶이 어딘지 그녀가 말해도 알 수 없지만, 그녀와 나의 돈독한 우정 아니, 삶의 공조가 흔들리지만 않는다면 나의 밥 잘 먹는 예쁜 누나를 응원하기로 했다. 근데 누나가 변심한 건 뭘까?
누나가 좋아하는 것과 지키려는 것
“다르게 행동하지 않으면 다르게 살 수 없어.”
누나는 혼술을 그만하기로 했고 당분간 금주까지 한다는 폭탄선언을 해맑게 웃으며 전했다.
누나는 술안주를 좋아한다. 저녁 식사 메뉴를 고르라고 하면 보쌈, 회, 육 회 등 술안주를 선택한다. 술 안 마시는 식사 자리라 해도 메뉴는 바뀌지 않았다. 누나는 주말 저녁에 수고한 자신을 토닥이며 좋아하는 음식과 소주 한잔 마시며 영화 보는 시간을 무척 행복해했다. 사람들과 어울려 늦은 밤까지 술잔을 기울이는 것도 좋아했다. 그때마다 살짝 취하는 게 무척 좋다고 했다.외톨이였던 자신을 사람들 속에서 풍덩 헤엄치게 해 준 밥과 술이 기특하다고 했다. 내성적인 그녀가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게 한 매개체도, 혼자 울던 밤 곁에 있어 준 친구도 그녀의 밥과 술이었다. 그런데 매개체였고 친구였던 전우를 정리해고하다니!
분명한 건 대학 시절부터 지켜본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안주 좋아하는 누나는 좋아하던 것과 거리 두기를 시작한거다.
일주일 뒤 누나를 다시 만났다. 누나는 다소 흥분해 있었고,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백 미터 주자처럼 말했다.
“배달 앱을 지웠잖아. 그게 뭐라고 손이 떨리는지, 결심한 첫날은 지우려다 마지막으로 '모둠회 하나만 더 시켜 먹자.' 하고 주문해서 한잔했어. 하하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닌 거지.”
“알았어. 잘했어. 일단 뭐 좀 먹자. 누나, 우리 뭐 먹을까?”
“난 이번 달 해독 다이어트 도시락 먹어야 해.”
“뭐?”
“너 먹고 싶은 거 먹어. 난 도시락 먹을 거야.”
너 먹고 싶은 거 먹으라고 양보할 그녀가 아니다. 배고프거나 원하는 메뉴가 아니면 짜증을 내서, 난 그녀가 좋아하는 메뉴를 무한 반복해서 먹어왔다. 누나랑 오랫동안 모임을 같이한 분과 합석한 적이 있는데 그분이 ‘모임 3년 동안 횟집에서 모였어.’라는 말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른 메뉴를 골랐을 때, 누나의 망연자실한 표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만큼 음식에 진심이었는데, 나보고 먹고 싶은 거 먹으라니! 게다가 그녀의 도시락을 보니 고기 한 점 없는 풀밭이었다. 마치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사막처럼.
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누가가 진짜 제대로 변하고 싶구나! 누나는 좋아하던 것들로부터 진심으로 변심했다.
다르게 살고 싶어서 변심 아닌 이별
혼자 갈비를 구워 먹으며 잔을 기울여야 했다. 누나는 술잔을 잘 도 채워주고 물이 든 소주잔으로 건배도 잘해서 그리 밉게만 볼 순 없었지만, 뭔가 밍숭 밍숭 했다. 그래도 변심에 진심인 그녀를 100%는 아니지만, 알 것도 같아서 앞으로도 변심한 그녀와 술을 마실 거다. 내게서 변심한 건 아니니까.
“배달 앱을 지우고 식단을 바꾸니까, 플라스틱 쓰레기가 줄었어.”
“잘했네. 아예 술 끊을 거야?”
“화면 조정 기간이야. 21일 술과 나, 몸과 마음 사이를 조율하는 거야.”
“하여튼 잘 갖다 붙여. 그럼 22일째 되는 날 우리, 찐하게 건배하자.”
“그래, 우리의 잔을 높이 들자”
“그런데 누나 다시 마시면 요요현상처럼 더 폭음하게 되지 않을까? 폭식도.”
“습관이 바뀌면 다르지 않을까? 나를 통해 실험해 볼래. 궁금하다 그렇지?”
“누나는 좀 별나.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배지만. ”
누나의 변심은 좋은 것에게서 멀어지는 게 아니었다. 과하거나 지나치거나 그녀에게 해로웠던 것들과의 이별이었다. 제대로 오래오래 좋아하는 것을 즐기기 위한 귀여운 반란은 아닐까? 이상한 건 수많은 건배보다 오늘 나눈 대화가 그녀와 나를 가깝게 한 것이다. 비로소 한 팀이 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