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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Jun 21. 2022

뜻밖에 우리

2. 성아와 연주

성아와 나는 서른셋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만났다. 18년 동안 친구로 지냈으니 우정이라는 타이틀을 둘 사이에 달아도 될 만하다. 진짜 친구, 그러니까 우정이라고 할 만한 보통의 연도 수를 채운 사이다. 세상을 구성하는 대부분이 그러하듯 숫자 이면의 질은 알 수 없지만, 외형적 조건은 갖췄다. 매일 만나고 언제 누구랑 섹스했는지도 아는 사이라면 이면의 질을 따질 필요 없는 사이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사이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농도나 기울기는 따질 틈조차 없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24시간 켜 둔 TV 같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지는 것과 반대로 몸이 가까우면 마음도 둘 사이를 가깝게 맴돈다. 겉으론 그렇다.


강남으로 전학을 간 나는 친구를 사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수영장이 있는 학교에 다닐 만큼 경제력이 되거나 강남 아파트에 살게 돼서 전학 간 게 아니라, 고모할머니네 반지하에서 살기 위해 노원구를 떠나 강남구로 온 거였다. 보석함에 잘 못 들어간 인조 구슬처럼 딱 봐도 내가 낄 자리가 아닌 걸 알았다. 그들과 나의 격차를 알아차린 속마음이 드러나는 것만 같아서 학교가 가까워지면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교실 문을 열 때는 후드티에 달린 모자가 거꾸로 매달린 듯 목이 가슴팍에 닿았다. 쭈그러든 쭈쭈바 그 자체였다.

아버지가 가난하다고 나까지 가난한 건 아니라고, 더는 개천에서 용이 자라지 않는다지만 나는 다를 거라고, 일기장에 쓰고 또 썼지만, 고모할머니가 새벽 댓바람부터 반지하 두 칸 방에 다 들리도록 건물 입구를 빗질하며 '이 시간까지 안 일어나니 저 모양이지. 얘나 어미나 아비 놈이나 텄어! 텄어.'하며 빗자루로 어미, 아비 그리고 새끼 마음을 모질게 쓸어댔고 그때마다 난 개천에 빠진 용이란 걸 인정해야 했다. 제기랄. 새벽잠 없는 게 잘 사는 조건이야? 나쁜 고모할머니.


고모할머니의 주문대로 우리는 계속 가난했다. 아버지는 전기 기술자라고 했는데, 나는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길래 늘 돈이 없는지 잘 몰랐다. 아버지가 전자제품 수리 가게를 차려서 살만해 지자마자, 할아버지가 쓰러져서 8년 동안 병 치레하셨고 그동안 아버지는 전셋집을 월세로, 가게 사장에서 직원으로 명함과 등본을 바꿔야 했다. 그때 진 빚을 아직도 갚고 계신다는 것만 어렴풋이 안다. 그런데 왜, 고모할머니는 사실을 왜곡하는 걸까? 게으른 탓이 아니지 않은가. 새벽에 안 일어나는 게 아니라 늦게까지 일한 건대. 더 싫은 것은 고모할머니가 한 바탕 빗질하면 엄마가 자다 깨서 후닥닥 빗자루를 잡으며 '제가 쓸게요. 어휴 부지런하셔라. 그래서 피부가 고 봐' 앞뒤 안 맞는 칭찬을 하는 거다. 엄마가 후줄근한 잠옷 바람으로 빗자루질을 시작하면 2분도 안 지나서 오빠가 반지하 계단을 무림의 방랑자처럼 올라온다. 고모할머니 빗자루 방향으로 침을 퉤 뱉고 학교로 가는데 까지 3분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6시 정각이 되면 '이 새꺄!'라는 외침이 알람이 된다. 어떻게 이런 소란에 잠이 깨지 않을 수 있을까. 오빠의 침이 고모할머니 빗자루 근처에 몇 번을 떨어져야 모멸스러운 아침 풍경은 끝날까. 반지하 창문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먼지만 나풀거린다.


전학 온 지 두 달이 지났다. 지정학적 위치에서 짝이 된 현정이는 친절했다. 그러나 나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반짝이는 것만 궁금해한다. 평범하든 비범하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좋은 것을 갖고 있을 때이지 갖고 싶지 않을 것을 가진 사람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범죄자나 연예인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빼고.

나는 범죄자도 셀럽도 아니고 멋져 보일 아무것도 없었다. 친절하게 대해줘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점심시간 때면 현정이는 '같이 가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식당까지 같이 간 적은 없다. 복도를 걸어갈 때는 현정과 가영 그리고 세정이 뒤를 따라갈 뿐이다. 그날도 현정과 그녀의 친구들 옆에서 함께 식사하는 듯 보이지만 나와 그들 사이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착해야 하는 현정과 혼자 먹는 티를 내고 싶은 않은 나의 무언의 협조일 뿐이었다. 그때 등 뒤쪽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미친년이 어딜  넘 봐"

"내가 뭘? 미친년아"

한 뼘은 키가 더 작지만 체격이 다부진 아이가 양갈래로 머리를 땋고 보라색 리본으로 곱게 묶은  맞은 편에 선 아이 머리를 낚아채고 흔들었다. 잡힌 아이는 '아악' 비명을 지르며 앞 뒤로 흔들렸다. 잡아챈 손이 흔드는 대로.


ㅡ3편에서 만나요.  <일단 쓰는 소설, 뜻밖에 우리>ㅡ


'단짠 시리즈'는 매주 화요일 배달합니다. 지금 당신이 듣고 싶은 말이 도착할 거예요. '단짠노트'와 '단짠 스토리'는 격주로 발행합니다.  화요일 글 도시락을 배달합니다. 응원해 주세요~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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