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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의 집 2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 그녀

by 단짠

적막을 걷어내려는 듯 집안을 둘러본다. 익숙한 공간이 위로해 주길 바랐지만, 그가 없는 집은 공격적이 돼버렸다. 그녀를 조이기라도 하려는 듯 벽이 성큼성큼 그녀를 향해 진격해 왔다. 이러다간 벽과 벽 사이에 압사당할 것 같았다. 더는 집이 안전하지 않았다. 그녀가 숨어버린 공간이 그녀를 삼켜버리려 하고 있다.


집이 괴물이 돼버렸다!


그 순간 동이는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집이 벽이 되어 자신을 삼키게 놔둘 순 없었다.


'살아야 해. 밖으로 나가야 해.'

황급히 신발이 놓인 현관으로 달려갔다. 오른발을 내밀어 신발을 신는다. 왼발도 내밀어 신발을 신으려 하다 멈칫거린다.

'머뭇거릴 때가 아니야, 나가야 해' 속에서 외쳐대지만, 정지된 채 숨마저도 조심스럽다.

결국, 발을 빼고 후다닥 창으로 달려간다. 아직은 어둠에 잠기지 않은 햇살이 마지막 빛을 짜내듯 동이를 비추지만, 그녀는 두꺼운 벨벳 커튼을 휘감아 당겨 창을 가둬버린다.


‘아직은 아니야.’


방 모서리에 쭈그리고 앉아 다리를 감싸 안는다. 혼자서 감싸 안는 건 온기가 생기지 않았다.


동이의 눈에서 뿌연 액체가 흘러나온다.

액체는 볼을 타고 흘러 턱으로 가더니 움켜잡은 무릎을 타고 흘러 바닥으로 떨어진다.

바닥에 액체가 고인다. 액체는 바닥으로 스며들어 탁한 얼룩이 된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집 모서리 바닥엔 얼룩이 곳곳에 있었다.

동이는 얼룩을 지우려고 애를 써 본 적도 있다.

아직도 애를 쓰곤 한다. 그러나 얼룩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더욱더 그 탁한 자국을 짙게 바닥에 퍼트릴 뿐이었다. 그녀는 더 깊이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끌어당긴다.


‘추워’


천일의 날 동안 그는 동이의 아침을 열어주었다.

천일의 날 동안 그와 동이의 포옹은 벨벳 커튼을 걷고 햇살을 집안으로 초대했었다.

천일의 날 동안 그는 동이의 입맞춤에 미소 지었다.


그러나


천일의 날 동안 낮의 공기가 팽팽해지고 바람이 등을 스칠 때마다 동이는 다시 밤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혼자 남겨진다는 두려움을 반복하며 심장에 새파란 멍이 생겨버렸다.


그때마다 그녀의 눈을 타고 흐른 액체가 그녀의 집 모서리마다 바닥에 얼룩을 남겼다.

어느새 얼룩은 기둥이 되어 그녀 집 곳곳을 차지해버렸다.

어둠은 너무나 빠르게 퍼져 버린다.




“동아, 아직도 추워?”


“추워.”


“내가 이렇게 날마다 안아주는데도?”


“해가 차오르는 게 두려워, 해는 자기를 데리고 오지만 또 데리고 가니까.”


“아침이면 내가 오잖아, 아침은 날마다 오는 거야.”


“밤도 날마다 오니까.”


“같이 신발을 신어 볼까?”


“같이 나갈 수는 없잖아.”


“동이야 이곳에 혼자 있는 게 두려우면 밖에 나가면 돼. 누구나 혼자 걷는 거야. 나도 혼자 걷잖아”


“여기도 거기도 혼자라면, 난 여기 있을래. 같이 갈 수 없다면 여기서 기다릴래”


“동이야.”


그는 동이를 굳세게 안는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도무지 알 수도 안아줄 수도 없다. 기둥이 자꾸만 돋아나면 이제 동이와 그사이를 기둥이 차지하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동이의 기둥이 왜 생기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왜 동이는 기둥을 못 보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녀의 눈을 타고 흐른 액체가 그녀의 집 모서리마다 바닥에 얼룩을 남겼다.

어느새 얼룩은 기둥이 되어 그녀 집 곳곳을 차지해버렸다. 어둠은 너무나 빠르게 퍼져 버렸다.


어쩐지 오늘은 벽이 정말로 자신을 집어삼켜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고개를 숙인 아이리스 꽃이 보였다.

'이젠,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감싸 안지 않을 거야.'

동이는 벌떡 일어났다.

혼자서도 아이리스 꽃에 생기를 줄 수 있게 되길 바라며 거울을 찾았다. 그녀는 오랫동안 거울을 보지 않았다.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언제 이렇게 거미줄로 덮여버렸지?’


동이는 소름 돋아하며 거울의 거미줄을 걷어 냈다.

그러고 보니 동이의 에메랄드 장식장에도 자꾸만 거미줄이 엉겨 붙곤 했다. 언젠가부터.

거미줄을 치우고 거울을 바라본다.


쨍그랑


“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동이가 휘두른 빗에 거울은 깨져버렸다.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에 동이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푸르게 변해버린 얼굴에.


그녀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입에서 실이 뿜어져 나왔다.

아주 가늘고 위태로운 실이 끊임없이 비명을 싣고 나왔다.

실들은 깨진 거울 조각 사이로, 에메랄드 장식장 위로, 벨벳 커튼 사이로 그리고 아이리스 꽃봉오리 틈까지 뿜어져 가 그들을 휘어 감았다.


그녀는 현관으로 뛰어갔다. 뛰어가면서도 비명을 멈추지 않았다.

망설임도 없이 신발을 신는다. 주저함도 없이 문을 연다.


“구해줘”


철컥 문이 열린다. 그녀는 뛰쳐나가려 몸을 문밖으로 내민다.


‘어? 아악’


문고리는 열렸는데 문은 밖으로 밀 수가 없다. 겨우 열린 틈 사이로 거미줄에 휘감긴 문 틈새가 보일 뿐이다. 아무리 열려고 애쓰며 밀어봐도 문은 거미줄을 걷어내지 못한다.


천일 동안 거미줄이 감싸버린 집.


그녀의 공포에 질린 휘둥그레진 눈마저도 비명에 따라 거미줄이 쳐진다.


‘안돼!’




똑똑 그가 문을 두드린다.


“동아, 동아 아침이야.”


문은 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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