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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Mar 29. 2021

시간의 언어 8

사랑이 비워진 자리를 미움으로 채우진 말아야지

안개인가? 온통 뿌옇게 스멀거려서 한 치 앞도 희미했다. 시야가 익숙해지니 강이 보였다. 

“어? 저기 남편과 민지네?”

민지와 남편은 조각배에 타고 있었다. 난 소리를 쳤다.

“민지야, 민지 아빠!”

소리쳐 불러 보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발만 동동거릴 뿐, 발이 앞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배는 남편이 노를 젓는 대로 점점 강 건너편으로 흘러갔다.

“안돼! 나를 혼자 두고 가지 마.”

비명을 지르며 깼다. 

‘꿈이었구나. 다행이야.’

온몸의 식은땀은 현실에서도 같았다. 속옷이 젖어 있었다. 눈물처럼 땀이 맺혔나 보다. 난 울컥 눈물이 터졌다. 마치 막힌 하수구가 뚫린 것처럼 울먹임이 터져 나왔다. 꿈에서 못 지른 소리를 질러대듯이 꺼이꺼이 울어댔다. 

얼마를 울었을까. 작은 창으로 새벽을 알리는 햇살이 살포시 걸터앉았다.


남편과 내가 서로에게 주는 외로움은 달라진 게 없었다. 달라진 건 십 년을 돌아 다시 왔다는 것뿐. 그래도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시간의 반복이 행동의 반복은 아니니까.

이제 더는 의미 없는 전화벨은 울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더는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다. 

남편과 내가 사랑하지 않게 된 건 후회할 영역이 아니었다. 

다른 사랑을 찾는 것도 후회할 것도 아니었다.

살아가는 일이 차오르기도 하고 기울기도 하는 것에 모두 책임을 질 수는 없다. 하지만 순간마다 선택은 책임져야 하는 것이었다.      

2021년의 내가 반복하는 건 2011년의 세월일 뿐, 생각도 행동도 다르게 펼쳐져야 한다. 남편과 내가 처음 사랑으로 돌아갈 순 없지만, 그 비워진 자리를 미움으로 채우지 말아야 한다. 


그 생각은 창가 햇살처럼 내 마음을 환하게 했다.

그제야 여전히 나만 보느라 딸도 남편도 못 챙겼다는 걸 깨달았다.

‘달라지긴 뭐가 달라져, 이제 정말 미래에서 온 사람다워져 볼까.’

딸이 자는 방으로 갔다. 조심히 문을 여니 민지가 편안히 잠들어 있었다. 

‘이불을 차고 잤네.’

이불을 덮어 주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잘 자라 주어서. 이제 엄마가 많이 사랑해줄게.’


방문을 닫고 나오니 마주 보이는 안방 문이 쓸쓸했다. 

커피를 타기 위해 뜨거운 물을 컵에 부으며 사랑이 떠나간 자리의 적막을 이번엔 잘 견뎌보리라 다짐을 했다.

사랑은 여러 결로 다양한 색으로 변해가니까.


‘그래 아침을 준비해 주자.’

밤사이 달라진 마음에 흠칫 놀라면서도 이제야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을 느꼈다.

아침이 밝자. 남편은 거실로 나왔다. 

“어? 어쩐 일이야? 일찍 일어났네?”

“씻고 와 아침 먹자. 민지도 깨울게.”

식탁에 모여 앉으니 하나의 퍼즐이 완성된 것처럼 뿌듯했다.

“엄마가 한 거야? 맛있다.”

“자주 차려줄게. 아니, 매일 아침 챙겨줄게. 지각도 안 하게 일찍 깨워줄게.”

“엄마 최고다. 아빠도?”

“응, 아빠도 깨워줄게.”

오랜만에 함께 맞이한 세 사람의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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