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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Mar 29. 2021

시간의 언어 10

시간 이동은 우연일까? 우주도 실수해?

“동물원에 같이 가줘서 고마워, 당신 바쁠 텐데”

“셋이 오랜만에 나들이해서 좋았어.”

“당신이랑 평일 날 저녁에 같이 있는 건 처음이야. 늘 회식에 야근에 바빴잖아. 민지랑 나랑 둘이서 저녁을 먹고 10시가 넘어서 올 아빨 기다렸어.”

“어쩔 수 없잖아. 직장생활이 다 그래”

“야근하면 술을 안 마시던가, 야근과 회식 때문에, 우린 밀려났다니까.”

“그만하자, 또 그런 말 꺼내서 기분 나빠지면 좋아? 그리고 당신 기억이 전부 맞는 게 아니야. 피곤해, 먼저 잘게.”

“그러지 말고, 얘기 좀 하자.”

“다음에,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해.”

“꼭 이래야 해? 한 시간이 걸려? 잠깐 얘기하자는 건데?”

“그만해. 다 끝난 일이야.”

“끝나? 언제부터 왜 끝났는데?”

난 어느새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미안, 또 격앙됐네. 왜 사고가 났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궁금하지 않아? 궁금하면 달라져? 너한테 사실을 들으면 달라져? 뭘 묻길 바라는 거야? 네 멋대로 다 해 놓고.”

그의 눈은 이글거리고 있었다. 분노로 타오르는 것 같더니, 한심하다는 시선을 던지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달라질 순 없는 걸까? 순간이 달라도 결과는 같은 걸까?'

이번엔 불행을 선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 밖의 영역에선 이미 어긋나 버린 것 같았다. 마치 출구도 없는 깜깜한 터널 속을 헤매는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시간 이동은 우연히 일어난 걸까? 아무 의미 없이. 우주의 실수 같은 건가. 달라질 게 없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뭐지?'

예전과 다르게 행동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니 속은 타들어 갔고 다리 힘은 풀려버렸다. 

소파에 주저앉으니 맞은편 벽에 무심히 걸린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시계 소리가 ‘째깍째깍’ 재촉하듯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점점 커졌다. '째깍째깍'. 거실이 온통 시계 소리로 꽉 차서 폭발해 버릴 듯했다. 마지막 째깍 소리가 비상벨처럼 길게 울렸다. 

'째깍 아아악!'


째깍 소리가 나를 깨우기라도 한 걸까. 나는 숨겨진 통로를 찾은 기분이 들었다.

‘그거였어. 10년 전으로 돌아와서 마냥 살 생각한 건 착각이야! 다시 돌아갈 수도 있어. 내가 여기 온 이유를 찾아야 해. 이 시간도 유한할 거야! 민지 곁에 머무를 수 없게 될지도 몰라!’

이해할 수는 없어도 알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존재가 감지하는 절대적 신호가 울리는 것 같았다. 


태어나고 살아가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모든 사람은 그 질문과 마주할 기회를 꼭 한 번은 인생에서 갖게 되나 보다. 기쁨, 슬픔과 같은 희로애락을 통해, 성공을 통해, 실패를 통해, 때론 병을 통해. 이렇게 나처럼 시간의 복제를 통해. 사람들은 자기의 살아온 결에 따라 자기 인생과 마주할 기회를 얻게 되나 보다. 

더는 지나간 분노를 풀어내거나 어긋난 인연을 바로 잡으려 하지 말아야겠다. 2021년의 내가 간절히 바랐던 것을 찾아야 한다. 오늘 2011년 7월의 날들에 그것을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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