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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Mar 29. 2021

시간의 언어 11

지금 여기서 오늘처럼

“엄마, 오늘도 집에 있을 거야?”

“응, 오늘 출근 안 해. 민지가 하고 싶은 거 하자.”

“진짜? 엄마랑 놀이터 가고 싶어. 이제 엄마 안 바빠?”

“이젠 엄마 안 바빠. 민지랑 같이 있을 거야. 놀이터 가자.”

“좋아. 학교 갔다 오겠습니다.”

신발주머니를 그네 태우며 리듬을 타듯이 학교로 출발했다. 


시간이 내게 허락한 되돌린 시간은 여전히 의문 속에 있다. 

무엇을 위해 일어났고 어떻게 진행될지 또 언제까지 여기 있을지 알 수 없다.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가슴으로 살아가니 예전에 나를 괴롭히던 갈등들은 지워지고 순간순간 온전히 살아 숨 쉬어졌다.

오늘 아침도 민지가 좋아하는 조기를 구웠고 남편과 아이를 깨웠다. 

한 사람이 온전히 내 삶 안으로 들어오는 사랑은 얼마나 놀라운 기적이었나. 그것이 유한하다 하면 어떤가. 그것은 산소와 같아서 살아 숨 쉬게 하고 비로소 온전히 둥근달로 차오르게 하는 것이다. 

둥근달로 차오르면 달은 다시 기울어지지만, 그것은 삶의 순리였다. 

보름달인 채로 살아갈 수만은 없는 것을 왜 그리 채우려고만 했을까. 

지독히 외로웠던 이유는 존재의 안정감을 타인에게서 찾으려 했을 뿐 아니라 비워지면 다시 채우려고만 했지 비워진 자리를 바라볼 줄 몰랐기 때문은 아닐까. 비워진 자리를 다르게 채울 수는 없었을까. 

이젠 내 삶을 정면에서 마주 보고 싶다. 지금 여기서 오늘처럼.     


“오늘은 출근이 늦네?”

“거래처가 집 근처라서 들렸다 출근하려고.”

“그렇구나. 오늘도 수고해.”

“그래.”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 부엌으로 가려는데 왠지, 오늘은 이대로 보낼 수 없다. 

“잠깐, 민지 아빠”

“응?”

“좋은 하루 보내”

“그래, 너도.”

“민지 아빠, 저녁에 봐.”

지금 우리의 시간은 젊은 날과는 다른 시간인걸. 그땐 그에게서 모든 것을 채우려고 만 했다. 이젠 내 삶을 타인에게서 찾지 말고 내게서 답을 찾아야 했다. 답을 찾기라도 하듯이 민지 방과 안방을 왔다 갔다 하며 여기저기 널려있는 물건들을 정리하는데 천둥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비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집안은 구름에 가려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메마른 천둥이 치고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민지 우산 안 가져갔는데’

심상치 않은 천둥소리에 무서워하며 비 맞을까 봐 걱정할 거 같았다. 초등학교 때 갑자기 비가 내리면 엄마가 학교로 찾아와 우산을 갖다 주시곤 하셨는데, 우산을 든 엄마가 얼마나 든든했던지. 나도 민지에게 든든하게 우산을 갖다 주고 싶었다.

민지가 좋아하는 주황색 우산을 갖다 주면 작은 볼에 가득 까르륵 환호성을 담겠지.

서둘러 민지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여름 소나기인가. 장마가 시작되는 걸까? 거침없이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민지에게로 서둘러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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