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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Mar 29. 2021

시간의 언어 12

구급차가 도착했다. 10년 만에 최단 시간 최대강수량을 쏟아 낸 폭우가 내 차를 휘감아 뒤 집어지게 했다. 전복 사고였다. 깨지고 부러져 일그러진 앞 유리창을 통해 가까스로 나를 꺼낼 수 있었다. 구급대원에 의해 응급조치가 이뤄졌고 서둘러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졌다. 몸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지만 나에게 죽음이 다가온 것을 알 수 있었다. 

병원으로 실려 가는 동안에도 빗소리가 우렁찼다. 폭우 속 고속도로는 너무 위험했다. 난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다. 숨은 쉬지만, 의식이 없는 뇌사상태로 중환자실에 눕혀졌다. 육신을 가진 삶이 꺼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숨이 마지막을 향하는 시간 동안 내가 간절히 원했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얼마 동안이었을까. 찰나였을지도 모르겠다. 육신 너머 다른 시공간의 나는 가장 되돌리고 싶었던, 그날로 돌아가 간절히 다시 안아보고 싶었던 딸을 안아줄 수 있었다. 사랑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누구나 한번은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간절한 순간과 마주한다는 말은 옳았다.

운명이 선택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선택이 운명을 결정짓는 거였다. 단 한 번의 선택이 모든 방향을 바꿀 수도 있었다. 내가 되돌리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던 건, 그 한 번의 선택으로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지 말 걸 그랬어.” 그건 소용없는 말이었다.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건 없지만, 사랑하며 죽어 갈 수 있는 것은 하늘의 관대함인가 보다.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어서 날마다 축복이었던 것을 알고 떠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민지야, 우산을 갖다 주지 못해 미안해. 사랑해.”

2021년 7월 11일 오후 5시 34분.

내 심장은 멈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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