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제베 May 22. 2019

내 삶을 이해받고 싶을 때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 임영태 소설

자기 인생을 누구에게 이해받을 필요는 없다. 이해라는 건, 자식이나 마누라가 아닌, 맞은편 막걸리 집에서 몽롱하게 취해 바라보는 어느 손님이 뜻밖에 해줄 수도 있는 일이다.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 임영태 소설

  

그렇다. 상대를 의식해서 자기 인생을 이해받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해를 받아야만 할 것 같은 경우가 있기에 고민이 되는 것이다. 거창하게 인생까지는 아니지만 지금도 나는 타인에게 해명 내지는 이해를 받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부끄럽게도 편식을 하는 편이다. 김치를 포함해서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 한다. 매운 음식을 결코 싫어해서가 아니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얼굴과 머리에 비가 오듯이 땀을 흘리는 체질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아내에게 김장철이 다가온다라는 말만 들어도 땀이 날 정도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의 콧잔등에는 이미 땀이 배어들었다.


이런 이유로 낯선 사람뿐 만이 아니라 지인들과도 술은 마시지만 식사 자리는 기피하는 편이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머릿속에까지 진득진득 흐르는 땀은 손수건으로도 닦으로 수 없다. 닦아지지 않은 땀이 머리에서 이마로 흘러내릴 때 나는 멘붕상태가 된다.  


결혼을 위해 3년 6개월 만에 일본에서 광주로 돌아왔을 때였다. 1군 건설회사에 입사를 하고 보니 본사에만 30여 명에 가까운 미혼 여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결혼을 위해 광주로 돌아왔다지만 결혼 상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전산실은 전체 부서와 협업을 하게 되어있다. 특히 여직원들과 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들의 취향이 궁금했다. 당시에는 SNS가 없던 시절이라 타인의 취향을 쉽게 알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직원의 취향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곳이 구내식당이었다. 뷔페식 식판에 선택한 반찬의 종류나 밥 먹는 모습으로나마 간접 취향을 가늠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가리는 음식이 많다. 매운 음식은 땀이 나서, 생선요리는 비린내가 싫어서 기피하다 보니 식성이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쩔 수 없었다. 구내식당에 가면 두 종류의 반찬을 빼고 나의 식판에 올려진 반찬은 주로 소시지, 콩나물, 두부, 계란 정도의 초딩 입맛의 반찬이었다. 어쩌다 비빔밥이 나오면 고추장과 김치를 뺀 채 허옇게 비벼진 비빔밥을 은폐하고자 김가루를 범벅으로 비볐다. 육개장이 나오는 날에는 갑자기 라면이 먹고 싶다는 핑계로 구내식당을 빠져나오기도 했다.


이런 부실한 반찬을 깨작깨작 먹는 나를 누가 매력으로 보았겠는가. 마음에 드는 여직원이 있었지만 고백의 기회도 만들 수가 없었다. 이후 회사는 IMF를 맞았고 나는 두 번째 일본으로 직장을 옮겼다. 2년이 지나 벤처기업 열풍으로 다시 광주에 돌아온 나는 옛 동료 여직원을 우연히 만났다. 커피를 마시면서 옛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나에 관한 뒷담화를 꺼냈다.  


"그때 여직원들 사이에서 어떤 뒷담화를 했는지 아세요?"

"글쎄요..."

"일본 생활을 했으면 얼마나 했다고 한국사람이 김치를 안 먹어? 흥! 라고요."

"네?!!!!! 으으으으으흐....ㅠ.ㅠ"

  

나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나의 매운 김치 식성을 이해받고 싶었다. 혹시 옛 여직원들의 모임이 있다면 무례하게 참석해서라도 이해받고 싶었다. 김치 맛을 잃어서가 아니라 땀을 안 흘리는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당황의 순간에도 나의 콧잔등에는 김치 이야기에 땀이 배어나고 있었다.



아내는 어떤 일에서건 한 번도 나를 탓하지 않았다...중략...내가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와 오늘 사표를 쓰고 왔다고 하면 아내는 "당신과 안 맞는 곳 같았어요." 하며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그런데도 가끔 아내의 얼굴에서 안쓰러워하는 듯한 표정을 보면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 임영태 소설


내 인생을 이해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딱 한 사람이다. 아내다. 물론 아내가 내 인생을 몰라준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해를 잘해주는 것 같아 소설의 주인공처럼 편집증적 조바심이 난다. 남자에게는 뻥과 투정이 있다. 나는 후자의 자격지심인 것이다.

그래도 값싼 낭만은 자제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솔직한 글만이 신선한 글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