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러버와 함께한 반나절 : 이탈리아 볼로냐

by 구은서


볼로냐는 처음에 서울의 왕십리처럼, 그곳 자체엔 특별한 게 없지만 교통의 요지인 곳 같아보였다. 그래서 베로나에서 로마로 가는 길에 환승을 해야하길래 잠시 들러서 1박만 하자 싶었다. 그러나 둘러보고 나니 떠날 때 가장 미련 뚝뚝 떨어졌던 곳.


볼로냐에서도 카우치서핑 플랫폼으로 알렉스 라는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프로필이 특이해서 흥미로웠다. 영국인인데, 어머니는 한국계. 그런데 또 어쩌다가 볼로냐에 살게되었을까?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넵튠 분수 근처에서 그를 만났다. 알고보니 볼로냐의 정중앙 같은 광장이었다. 알렉스는 잠깐 보면 완전 외국인인데 2초 이상 쳐다보면 한국인 얼굴이 보였다. 볼로냐는 처음이지? 하며 광장을 소개해주고 처음엔 함께 성당 내부를 걸으며 이야기했다. 그는 몇년 전 볼로냐에 놀러왔다가 완전 사랑에 빠졌고, 개인 사업을 하고 있어서 디지털노마드 비자로 여기에 살고있다고 했다.


거리를 걷다보니 항상 건물 옆의 길을 걸을 때는 아치와 기둥으로 된 천장 있는 통로를 걸었다. 알렉스가 이걸 '포르티치'라고 한다고 말해줬다. 중세 때 땅이 좁아서 건물을 더 확장하려고 1층은 통로로 다닐 수 있게 하고 2층부터는 건물 일부가 되게 했다. 볼로냐는 포르티치가 엄청 많아서 비오는 날에도 비 안맞고, 여름엔 햇빛도 피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했다. 볼로냐에 세 가지 유명한게 있는데 포르티치, 붉은 색, 미식이라고 했다. 미식은 알고 있었다. 볼로네제 파스타를 먹어보고싶었기 때문에. 붉은 색도 사방이 온통 붉은 벽돌로 된 건물들이어서 바로 이해가 됐다.


IMG_2381.JPG?type=w773 성당마저 붉은 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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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는 최초의 의학 도서관, 푸드코트처럼 먹거리를 많이 파는 시장, 중세시대 여러 가문들이 경쟁하며 지었던 탑 등등을 소개해줬다. 탑 하나는 위험할 정도로 기울어서 그 앞의 탑까지 폐쇄해둔 상태라고 했다. 눈이 의심될 정도로 기울어있어서 신기했는데, 예쁘진 않아서 안유명한 것 같았다.


볼로냐엔 젤라또 장인들이 많다고 했다. 젤라또 장인의 제자가 여기서 배우고 그가 또 여기서 젤라또 집을 차리고... 하다보니 경쟁이 붙어서 엄청난 젤라또 맛집들이 들어서있게 됐다고. 이탈리아에서 일반적인 젤라또집에 가면 젤라또가 다 보이게 먹음직스런 모양으로 디스플레이해놓고 떠주는데, 그렇게 하면 젤라또 맛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는다고 했다. 진짜 제대로된 집은 젤라또가 안보이는 뚜껑을 열어서 퍼준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그가 좋아하는 젤라또집 중 하나를 갔다. 진짜로 젤라또가 안보이게 덮어놓고 주문할 때 뚜껑을 열어서 퍼줬다. 맛있었다.. 쫀득한 텍스쳐가 진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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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내가 예전에 추천받았던 파스타 집에 갔다. 정시에 가면 엄청난 웨이팅이 있는 인기 있는 곳이라 이른 저녁을 먹었다. 시그니처 메뉴들이 진짜 독특했고 듣도보도 못한 파스타 종류들에 한참을 고민했다. 나는 고르곤졸라 치즈가 들어간 파스타를, 알렉스는 호박무스가 들어간 파스타를 시켰다. 내가 시킨 건 파스타 자체에 비트가 들어 있고 만두처럼 하나씩 먹는 요리였다. 비트가 들어간 건 알고있었지만 비트도 고르곤졸라 치즈도 너무 강하게 느껴져서 취향은 아녔다. 그가 주문한 건 맛있었다.


파스타 하나에 물, 빵, 사이드 디시까지 다 함께 트레이에 나와서 오랜만에 한국 식당에 온 기분이 들었다. 알렉스가 "기내식 먹는 것 같아" 라고 해서 웃었다. 분위기도 성수동 어디메에 있을 법한 밝은 바이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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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는 외모와는 달리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르고 큰 관심은 없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미국 이민 3세 쯤 되셔서 한국 음식 하실 줄 모르고 한국어도 거의 모르신다고... 그는 한국에 딱 하루를 머물러봤다며 웃었다. 일본과 한국을 묶어서 자유여행을 왔다가 일본의 어떤 소도시가 너무 좋아서 거기서 시간을 다 보냈다고. 그 말에 속으로 통탄을 금치 못했지만 대화를 해보니 꽤 그 다운 선택이었다. 볼로냐도 연고 하나 없는데 사랑에 빠진 나머지 아예 이주를 한 걸 보면. 너는 좋아하는 게 생기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 같다고 말하니 동의했다. 꼭 한국 다시 오라면서 제주도랑 경주를 영업했는데,,, 잘 먹혔는지 모르겠다. 한국에 대해 설명할 때 그가 볼로냐 소개하듯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너무 당연하게 살아와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식사가 끝날 즈음, 계산하려고 성큼성큼 걸어가니 그는 이미 다 계산해 두었다고 했다. 중간에 화장실 간다며 일어났을 때 미리 결제했다고. 한국 잘 모른다며 어떻게 고도의 한국인 스킬을 쓰는거지? 띠용 했다. 이렇게까지 대접해줘서 넘 고마웠다. 너무 큰 호의를 받으면 의심부터 해봐야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여유롭고 과하지 않은 다정함이 있는데다 볼로냐에 너무나 진심이어서.. 정말 내가 볼로냐에서 좋은 경험을 하길 바라는 것 같았다.


그의 영업은 성공적이었다. 나 또한 볼로냐 같은 아름다운 소도시에 한번 살아보고싶단 생각도 해봤다. 확실히 여행은 소도시가 취향인데, 사는 것은 어떨지. 대도시의 도파민에 절여져있어서 너무 금방 질리려나. 어쨌든 볼로냐에서 반나절은 너무너무 아쉬웠다. 다른 젤라또 가게, 시장 음식, 볼로네제 파스타가 아른거린다.


다만 볼로냐가 여름에는 너무 습하고 더워서 알렉스는 몇 달은 수영할 수 있는 도시에 가서 지냈다고 했다. 그때 그때 살고싶은 곳에서 사는 자유를 누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즉각적인 반응은 당연히 '나도 저렇게 살고싶다' 였다. 그런데 밤에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똑같이 하고싶지는 않았다. 해외에 산다면 같이 사는 사람이든, 일하는 사람이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나 조직이 필요할 것 같다. 요즘의 나에겐 자유보단 정착이 더 큰 가치로 여겨지고, 완전히 혼자 지낼만큼 혼자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진 않는다. 알렉스에게는 명확하게 원하는 걸 찾고 그걸 위해 뾰족하게 구체화해서 길을 만들어냈다는 점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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