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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여행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지만

by 구은서

지지난주 금요일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10월 21일에 출국해서 39일 동안 유럽의 17개 도시를 여행했다. 거쳐간 나라들은 크로아티아>스페인>포르투갈>이탈리아>벨기에>네덜란드>독일. 이렇게까지 많이 이동할 줄은.. 무의식은 알고있었고 의식적으론 몰랐다. 처음엔 이탈리아까지만 계획하고 출국했었다.



퇴사한지 두달 째에 방황하는 마음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내가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짧게는 여행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모르는 채로. 떠나기 전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라고 쓴게 그나마 구체적이다. 운좋게도 많은 사람들과 웃으며 대화해봤다.



유럽으로 세번째로 여행하는 것이라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깊은 내면에는 여전히 머나먼 대륙에 대한 환상 또는 여행에 대한 환상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여행을 못떠나거나 중간에 망할까봐 한동안 엄청 쫄아있었다. 내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유럽은 또 다르지 않을까 하는 희망, 여행을 다녀오면 내 문제들 중 무엇이라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만나고 되도록 사랑에 빠져보면 좋겠다는 희망 같은 것들을 품고 있었다.



내 희망들은 절반쯤 실현되었고 '이런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하고 실망도 많이 했고 고생도 많이 했다. 모든 상처를 후시딘으로 해결할 수 없고 추석연휴에 몰아서 하려던 공부를 모두 끝낼 수 없는 것처럼 당연히 여행이 완전히 해결해주는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실현되지 못한 절반의 희망 또한 기록해두고싶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아는 만큼이나 무엇을 싫어하는지도 몸에 새겨두면 미래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좋아하는 것들로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이 왜 실현될 수 없었는지를 알면 더 현실적으로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행을 통해 몸으로 기억하게 된 미세한 힌트들이 여전히 진행중인 고민에 도움이 될거라 믿는다. 여행은 여행이었고 현생은 현생이지.. 하며 살고싶지 않고 경험의 점과 점 사이를 연결해보면 무언가 선이 나올 것만 같다.



나는 늘 안좋은 줄 알면서도 크게 시작하는 편이다. 17개 도시를 다녀왔으니 도시별로 17편의 글 정도는 쓸수있지 않을까? 스스로를 믿어보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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