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엔 수포자란 말이 없어요. 수포자라는 단어를 절대 쓰지 맙시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모두 ‘수포자’라는 단어를 알고 있을 겁니다. 이 단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텐데요. 그래서일까요? 신기하게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습니다. 이제는 학생들이나 수학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일반인조차도 수포자라는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합니다.
요즘 언론 매체에서 수포자 문제를 다루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완벽한 수포자’?? 또 ‘잠정적 수포자’라는 단어는 도대체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심지어 ‘수포자 구출 작전’이라는 거대한 목표 하에 ‘수학 클리닉’을 만들어 ‘수포자’들을 치료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만 마음이 불편한가요?
수학이 얼마나 대단하면 수학을 못하는 학생들을 ‘수포자’ 집단으로 몰아넣어야 할까요? ‘클리닉’은 병을 치료하는 병원을 말하는데, 그렇다면 수학을 못하는 것이 병인가요?
다른 나라의 상황이 궁금했습니다. 저는 싱가포르에 오자마자 제가 살고 있는 싱가포르의 현지 학생들이나 교사들에게 수포자와 비슷한 의미의 단어가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들은 왜 그런 질문을 하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수포자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단어였습니다. 수학은 추상적이고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는 과목이지요. 탄생 배경부터 어려웠습니다. 고대 그리스 이래로 수학은 소수의 천재들만이 취미생활로 즐기던 학문이었고, 겨우 100여 년 전부터 일부의 사람들이 대중들을 위해 정리해 놓은 형태가 지금 여러분이 배우고 있는 수학의 모습입니다.
시대와 장소에 상관없이 아주 일부의 사람들만이 수학을 잘하고, 또 좋아합니다. 여러분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의 학생이 수학을 어려워합니다. 수포자라는 단어는 없지만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수포자’나 ‘수학클리닉’이라는 단어를 사용할까요? 이 단어들을 과연 누가 만들었을까요? '수포자'라는 단어는 일종의 낙인 프레임에서부터 유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수학교육을 하는 사람들은 '수포자'라는 낙인 프레임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수학이 정말 어렵고 누구나 잘할 수 없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수학 정말 어렵습니다. 사실 평범한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수학을 직접적으로 쓸 일이 거의 없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싱가포르와 같은 선진국에서는 수학 이외의 의미 있는 배움을 통해 논리력, 사고력을 충분히 기를 수 있는 또 다른 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학교육자들은 우리가 직면한 수학교육의 문제에 대한 탈출구를 올바로 제시해주고 있지 못합니다. 답이 없으니 각자 가지고 있는 의견이 모두 다 다릅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두 다르다 보니, 결국 학생들이 타고 있는 ‘수학 배’가 이미 산으로 와 있습니다. 결코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아주 분명한 것은 우리가 '수포자'나 ‘수학 클리닉’이라는 단어를 절대로 쓰지 않는 것부터 시도해 나가야 합니다.
정확한 답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빼곡한 수식으로 가득 찬 차가운 수학 교실보다는 누구나 수학을 자유롭게 음미할 수 있는 수학 교육 문화가 하루빨리 정착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