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우리는 ESG를 애쓰지] ⑥ 푸른 바다와 함께 ESG
123만 명과 함께 한 각본 없는 드라마
씨프린스 호 기름유출 사건을 접하는 순간 세상은 까맣게 변해버렸습니다. 단 한순간의 실수로 깨끗했던 바다는 한순간에 지옥의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저는 이것을 가만히 지켜만 볼 수는 없었습니다. 태안해안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닦아내고자 현장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기름을 최대한 걷어내 봐야지’하는 마음으로 각 지역에서는 버스를 대절했다. 당시에 함께한 분들의 얼굴에는 예상했던 긴장감 대신 그저 봉사하러 간다는 기분과 힘든 일이기에 가는 길이라도 즐겁자는 뜻으로 웃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가득 싣고 태안해안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날 기사가 충격적인 인상을 주기에는 충분했기에 고무된 표정으로 현장의 고통은 전혀 모른 채로 그 장소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마치 검은빛 전쟁터였습니다.
태안의 주민들은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했습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새벽부터 출발해 제가 도착한 곳은 충남 태안군에 있는 만리포 해수욕장 전 의향 2리 개목항이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서로를 위해 우비와 마스크를 지급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은 환경정화라는 하나의 목표에 고무되었습니다. 항구 입구에는 ‘국민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자원봉사자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자원봉사자 여러분들의 따뜻한 손길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태안 주민들의 간절함을 보니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얼마나 기다려졌을까 생각하며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자원봉사자들은 안내에 따라 수건과 옷가지가 들어있는 마대를 하나하나 들고 해안가로 향했습니다. 드 넓은 갯벌과 특유의 내음으로 우리를 반기던 태안 해안가는 이내 마스크 없이 들이켰다가는 바로 구토를 유발할 정도의 기름 냄새가 엉켜 진동했습니다. 닦아도 닦아도 도저히 닦여지지 않을 엄청나고 거대한 그 현장은 지금까지도 이 따끔씩 꿈에 나타나서 저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주변은 온통 검은빛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모래로 가득한 금빛 해안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사장 뒤에 삼각형의 산들이 서 있고 모래가 아닌 검은빛 석유 가루가 가득 깔려있었습니다. 검은빛 모래사장은 마치 다른 행성에 불시착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검은 모래사장에서 주위를 둘러보아도 온통 검은빛이었습니다. 검은 모래사장은 거대한 캠핑장이 되었습니다. 전국에서 몰려온 자원봉사자들이 곳곳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이 상황을 맞았습니다.
간간이 여기저기서 “세상에, 세상에... 이것 좀 봐….” 탄식 섞인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중간중간 가족 단위로 자원봉사를 오신 분들 중에 어린아이도 잠시 가세하였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순식간에 감당이 안 되는 이 엄청난 재앙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른들도 힘든 상황에 아이들의 성의는 그저 마음으로만 받을 수밖에 없었던 잔인한 지옥의 전쟁터였습니다. 마치 기름 전쟁으로 뒤범벅이 되어 검은빛을 띤 전사들의 검은 피로 온 세상이 흩뿌려진 듯했습니다. 참혹한 이 전쟁터에는 오로지 패색만이 짙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은 말없이 돌들을 열심히 닦았습니다. 돌 속에 숨은 돌들도 기름 찌꺼기로 가득했고 땅속을 파 보아도 기름은 끝없이 나왔습니다. 어떤 자원봉사자분들은 벌써부터 요령이 생기셨는지 한 수 가르쳐 주겠다고 하시면서 빠르고 분주한 손놀림의 화려함을 그 자리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벌써 어딘가 드럼통과 함께 하나둘씩 닦아 놓은 수건을 따로 처리해서 가져가시는 것을 전담하시는 분도 계실 정도였습니다. 어릴 적 항구에 자주 갔던 저는 돌을 들어보면 게, 소라, 물고기들이 달아났을 추억에 잠기면서 돌을 닦았습니다. 하지만 검은빛으로 드리워진 해안가에서는 어릴 적의 추억이라곤 하나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해안 입구 ‘이곳은 마을 공동어장으로 사전에 허가받지 않은 무단 채취는 법으로 금한다’는 표지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돌은 닦여 질지라도 죽어가는 생명마저 닦아 낼 수는 없었습니다.
돌을 하염없이 닦았습니다. 하얀 면을 드러내던 수건도 검게 물들고 몇 개를 바꾸어도 금세 너도나도 검은색으로 뒤덮여 버렸습니다. 얼마나 지났을지 오늘 안에는 아니 1년 안에 아니 10년이 지나도 이 지옥의 고통은 언제 끝날지 가늠도 되지 않았습니다. 돌을 닦는 봉사자들 이마는 구슬땀마저 검은색이 되어 흘렀습니다. 돌에 묻은 기름을 닦고 있었는데 이내 어민들과 바다와 바다를 근간으로 살아가는 생명의 눈물과 마음을 닦고 있었습니다. 헝겊으로 기름을 완전히 닦아내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검은 자갈 위에는 검은 악취를 내뿜는 기름이 한가득 묻어 있었습니다. 바닷물과 섞인 기름 덩어리는 대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검은 피눈물’로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자갈 위의 기름은 마치 태안 어민들의 애타며 흘리는 눈물로 보였습니다. 자원봉사자에게 쉼은 절대 허락될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이만하면 되었다는 신호가 보이기 전까지는 쉴 새 없이 기름을 닦았습니다.
이러다가는 다 죽게 생겼다.
기름 닦다가 쓰러지는 자원봉사자 분들도 꽤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중간에 구토를 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만큼 심각했고, 그만큼 지옥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실수로 자원봉사자들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도 어민들과 바다를 근간으로 살아가는 생명에게 우리는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 죄를 자원봉사로라도 속죄한다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쉼 없이 수양하듯 닦아도 이 검은빛은 좀 저첨 줄어들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명으로 가득 찬 검은 광장은 검은빛 하늘로 가득했습니다. 우리가 망친 자연을 조금이나마 위로해보고자 애처로운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검은 자갈 틈 속에서 스멀스멀 나온 게 한 마리가 기지개 켜듯 비틀거리며 입속에서 검은 물과 싸움을 이어나가며 한 방울 한 방울 내뱉고 있었습니다. 싸늘했다. 여린 게는 어린아이처럼 보여 가엾은 마음에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혔습니다. 눈보다 빠른 손으로 이 어린 생명을 닦아내고 최대한 깨끗해 보이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아쉽지만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물이 밀려올 시간에는 봉사 활동을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쉽지만 이제는 태안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되돌아 나오는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습니다. 이렇게나 꽤나 고생했어도 끝날 길이 없을 방제작업의 방식은 아쉬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자갈의 깊이는 0.6m가량 됩니다. 그 상태로 자갈 위의 부분만 집중해서 닦아냈습니다. 닦는 즉시 다시 기름이 그 위로 차곡차곡 약 올리듯 다시 그 무서운 자태를 드러내어 가슴 한편으로는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인 것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닦아도 그 자리에 놓으면 다시 기름이 약 올리듯 서서히 차오르니 큰 자갈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시작 위치를 정해 놓고 한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작업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같은 시간에 훨씬 넓은 구역을 청소할 수 있었습니다. 전략이 필요했고, 중간중간 노련한 분께서 팁을 전수를 해주셨는데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은 잘 나진 않았지만 무작정 닦기만 하는 것보다는 나았습니다. 우리 세대의 늑장 대응으로 미래의 보고(寶庫)인 바다가 검은 물빛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기름유출이 관련은 없더라도 우리 세대가 안고 가야 합니다.
미래 세대에게 환경에 관해 감히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하는 의문으로 제 머리는 하얗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어떻게 이를 설명해 주어야 할지 아득해졌습니. 작업이 어느 정도 지났을까 싶은 상황에도 배꼽시계는 울렸습니다. 식사하라는 뱃속의 신호였다. 주변의 검은 피를 바라보노라면 배는 고픈데 손에서 수저를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칠흑 같은 모래사장의 어둠 속에서 꽃이 피듯 바라는 마음으로 닦아냈습니다. 밤이 되면 밤하늘에는 쌀알을 흩뿌려 놓은 듯 반짝거리는 별이 가득했습니다. 모래사장을 잠시 벗어나 주차장에 드러누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늦게까지 남아있던 자원봉사자들과 저는 이 밤이 생의 가장 비참함으로 가득한 밤 중 하나였습니다.
검은 돌, 검은 자갈, 검은 바다, 검은 모래 속 기름이 기억 속에 가득했습니다. 어려움을 함께한 자원봉사자들과 모두가 염원하면 생태계 복원이 이루어질 날이 언제 올 것인가,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언젠가는 우리 세대에나 미래세대에나 이런 지옥을 다시는 겪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과 국민과 세계인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꼼꼼한 관리를 통해 깨끗하고 믿음이 가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도 바쁜 일상을 보내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오늘도 우리는 ESG를 애쓰지」는 ESG 작가 오병호의 좌충우돌 ESG 일상을 적는 매거진입니다. 여러분들의 따뜻한 관심은 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D
오늘도 ESG를 사랑하는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