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 도서 대출 서비스
2021년 1월 8일, 서울
영하 14도, 체감 온도 영하 28도
오후 3시. 어제 예약한 책들을 받기 위해 도서관으로 출발한다. COVID19의 출현으로 작년부터 휴관과 제한적 개관을 거듭하고 있는 동네 도서관이 비대면 대출과 반납의 보완 대책인 "안심 도서 대출 서비스"를 다시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읽고 싶은 책-제한 권수는 5권을 하루 전날 미리 예약하고, 다음 날 오후 두 시와 다섯 시 사이에 도서관 현관 앞에서 대출한 책을 오프라인으로 받을 수 있는 하이브리드 서비스다. 도서관 현관에 도착해 벨을 누르면 사서들이 나와 예약한 도서를 직접 전달해주는 방법인데, 가끔 이용 중이다. 책을 구입하기도 하고 전자책을 읽기도 하지만 꼭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되는 책들이 있다. 번거로운 버릇이다.
도서관은 동네의 높은 산등성이 아래 있다. 오후 3시 15분. 씽씽 부는 겨울바람과 쏟아지는 굵은 눈발이 동시에 얼굴로 들이닥친다. 안경과 마스크가 임시 피난처 역할을 한다. 훌륭하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걸음의 보폭을 넓히니, 숨이 가빠진다. 마스크 안이 숨으로 차오른다. 헉헉헉, 숨 뭉치가 마스크 틈새로 줄기 다발처럼 빠져나가 투명도를 유지해야 할 안경 렌즈를 대책 없이 흐려놓는다. 앞이 보이질 않는다. 다행히 몸의 감각이 기억하는 데로 아무도 없는 텅 빈 언덕길을 걷는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하체의 균형을 잡고 걷는다. 할 만하다. 누가 이런 겨울의 끔찍한 날씨에 책을 빌리러 높은 언덕에 있는 도서관을 찾는 고행을 하겠는가! 그것도 책을 받아 들자마자 열람실에 들어가 몸도 녹이지 못하고 도로 걸어 내려와야 하는데 말이다.(사실 이렇게 까지 날씨가 환상적일 줄은 몰랐다.) 마스크 안쪽에 수분이 폭발하듯 맺힌다. 참을 수가 없군, 마스크를 벗어 물기를 촥촥 털어낸다. 다시 쓰려고 얼굴에 갖다 대자마자,
마스크가
얼어붙었다. 1초!
희고 딱딱하고 냉정한,
그냥 얼음이다!
경이로운 순간이다.
감탄사가 터진다.
얇고 강렬한 얼음 갑옷
심장까지 냉기가 훅 끼친다.
몇 번의 들숨과 날숨이
경이로움과 뒤섞이니
알 수 없는 기운이 돈다.
얼굴이 감각을 잃는다.
현관에 도착. 벨을 누른다.
파란 점이 뜨고
바람이 불고
눈이 폴폴 나린다.
사서분(들)이 나오신다.
서로 반갑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정말 춥죠!
반납할 책과 회원 카드를 건네니
그분들이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나도 따라 들어가고 싶다.
햇볕 한토막이 떨어진
화단 옆으로 간다.
3시 30분. 고요하다. 혼자서,
기다린다,
기다린다.
밖에서 서성인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책 꾸러미와 카드를 건네받는다.
아니에요 말하며 웃는다.
안녕히 가세요,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3시 35분.
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으로 걸어 올라갔다가 책을 들고 내려오는 행위는 일상의 산책이자 운동이다. 빠지면 섭섭한 번거로운 명상이다. COVID19 이전에도 그랬으니 COVID19 이후에도 그렇겠지. 오늘, 사람을 만나 나누는 인사말이 새롭다. 상쾌하게 진저리를 치며 내려오는 비탈길에서 눈발이 그쳐 아쉽네하고 혼잣말을 한다. 발걸음이 엉성하고 겨울은 춥다.
오후 4시.
집 앞에 도착. 뒤뚱뒤뚱 엘리베이터에 탄다.
미끄럽다. 얼얼하다. 거울을 본다.
동그란 안경 렌즈에 얇은 얼음 막이 차차차,
녹아내려앉고 있다. 현재 진행형이다!
투명한 레이스 커튼이 서서히 열리며 작동한다.
신기롭다, 얼음 렌즈를 낀 안경알이라니!
하하하 웃음이 터진다.
나는 지금 우주선 혹은 잠수함 혹은 비행기 또는 새벽 기차 안에서
아주 작고 습한 동그란 창밖으로 결정적인 계절을 내다보고 있다.
기똥찬 기분인걸! 앞이 뿌옇고 덜컹덜컹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