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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과 Sep 24. 2018

60년 이상 왼손가락만 뚝뚝 꺾은 집념의 의사

'엄마가 틀렸어!'를 증명해냈다

캘리포니아의 의사 도널드 엉거(Donald Unger)



손가락 그렇게 뚝뚝 꺾으면 관절염 걸려!


동서양을 막론하고, 손가락을 뚝뚝 꺾는 아이들에게 부모님들께서 종종하시는 경고입니다. 이를 들은 아이들은 손가락 꺾기를 그치거나, 구시렁거리거나, 부모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만 손가락을 꺾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어린 도널드 엉거는 엄마의 말이 틀렸음을 실험으로 증명해 보이겠다는 비범한 결심을 합니다.




도널드 엉거가 선택한 실험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실험 방법>

1. 왼손가락을 하루 2회 이상 뚝뚝 꺾는다.
2. 비교를 위해 오른손가락은 꺾지 않는다.
3. 매일 반복한다.


이 실험을 지속하는 사이 도널드 엉거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극한의 인내가 필요한 이 실험을 계속했습니다. 실험을 시작한 지 장장 50년이 지난 1998년, 도널드 엉거는 미국 류마티스 학회의 공식 학술지인 ‘관절염과 류머티즘( Arthritis & Rheumatism)’에 “손가락을 뚝뚝 꺾는 것은 손가락 관절염을 유발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의사 도널드 엉거


연구를 발표한 시점까지 도널드 엉거가 왼쪽 손가락을 꺾은 횟수는 50년간 총 36,500회 이상입니다. 오른손은 일부러 꺾지 않았습니다만, 정직하게도 가끔 의도치 않게 꺾이는 경우는 발생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50년간 실험한 뒤, 관절염이 걸린 손가락이 있는지 검사한 결과 엉거의 양쪽 손 모두 관절염의 징후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도널드 엉거가 손가락을 꺾으면 관절염에 걸린다’라는 엉거 어머니의 가설은 거짓이었음이 증명된 겁니다. 


도널드 엉거의 손. 출처: Marc Levy/ Cambridge day


도널드 엉거는 연구 대상이 한 명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손가락 꺾기와 관절염이 완벽하게 무관하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하기에 무리가 있음을 밝히며,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도널드 엉거는 이 연구를 통해 '시금치를 먹는 것의 중요성' 등 부모님들의 다른 신념도 틀렸을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많은 연구 논문의 경우 마지막에 해당 연구를 위해 연구비를 투자한 정부기관이나 기업 등에서 지원을 받았음을 밝힙니다. 도널드 엉거의 경우, 논문의 마지막 문단에 정부 또는 제약회사 등의 지원금 없이 전적으로 자신이 비용을 지불했다고 밝혔습니다.




누가 이 연구를 심사했나?


이 연구 이전에도 손가락을 뚝뚝 꺾는 것과 관절염의 관계에 대해 연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975년 캘리포니아의 의사 로버트 스웨지(Robert L. Swezey)와 스튜어트 스웨지(Stuart E. Swezey)는 평균 78.5세의 노인을 28명을 대상으로 손을 뚝뚝 꺾어왔는지와 관절염 발병 여부를 조사했고, 관련성이 크지 않다는 결론을 낸 적 있습니다.


도널드 엉거는 로버트 스웨지의 논문을 인용하며 자신의 50년에 걸친 연구가 이 연구에 힘을 보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도널드 엉거의 연구를 심사하게 된 로버트 스웨지는 꽤 감명받은 듯합니다. 로버트 스웨지의 연구에 대한 심사는 “엉거 선생님의 연구를 심사할 기회를 갖게 됐다는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가 인고 끝에 이룬 연구는 1973 년의 발견에 상당한 신뢰감을 더합니다.”라고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로버트 스웨지는 도널드 엉거 스스로도 연구의 한계로 짚은 점에 대한 개선점도 제시합니다. 도널드 엉거 한 사람의 50년 기록으로는 손가락 꺾기가 관절염과 완벽하게 무관하다고 증명하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인종, 성별, 사회적 지위, 초기 손가락의 상태, 그리고 원래 가지고 있던 질환이 있었는지 등을 비교할 수 있는 다른 데이터를 추가로 조사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 연구를 발표한 이후에도, 도널드 엉거는 10년 이상 왼손가락만 하루 2회 이상 꺾기를 이어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2009년 한번 웃고, 그다음 생각하게 해주는 연구에게 주는 상인 이그노벨상을 받았습니다. 도널드 엉거는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on the other hand) 60년 이상 손가락을 꺾는 것은 상을 받을만한 자격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라며 수상소감을 시작했습니다.


On the other hand (다른 한편으로는)라고 말하고 있는 도널드 엉거. 출처: The 19th First Annual Ig Nobel Prize Ceremony


그리고 자신의 묘비에 “이제야 관절 꺾기를 멈춘 자, 도널드 엉거. (Here I Donald Unger, who finally quit cracking his Knuckle.)”라고 남기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참고자료>

Unger, Donald L. "Does knuckle cracking lead to arthritis of the fingers?." Arthritis & Rheumatism: Official Journal of the American College of Rheumatology 41.5 (1998): 949-950.

Swezey, Robert L., and Stuart E. Swezey. "The consequences of habitual knuckle cracking." Western Journal of Medicine 122.5 (1975): 377.

The 19th First Annual Ig Nobel Prize Cere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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