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주 가끔.
문득 그런 사람이 있다.
한때는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아릿했던 얼굴인데,
지금은 사진첩처럼 뒤적이다가
‘이 사람이 누구였더라’ 싶은 얼굴.
그 사람이 나였던 날도 있다.
사랑했는지, 혹은 사랑을 하기로 스스로를 속였던 건지
그 차이를 나는 아직도 분간하지 못한다.
때론 입을 맞췄지만 마음은 닿지 않았고,
때론 손을 잡았지만 서로의 중심은 어긋나 있었다.
긴 시간을 함께한 사람은 이상하리만치
그립지 않다.
함께한 시간만큼 쌓인 먼지,
빨랫줄에 걸린 속옷처럼 서로에게 익숙하고 불편했던 기억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건,
그 사람이 아니라 그때의 내가 싫었다는 뜻이었는지도.
하지만
잠깐 스쳐간 사람,
소주잔 기울이다 툭 하고 터뜨린 웃음 속에 숨어 있던 사람은
자꾸만 마음의 뒷자리에 앉는다.
아무것도 아닌 듯 앉아서
내 안의 ‘아무 일도 아닌 것들’을 건드린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은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했던 내가 그리운 것일까.
어설프고 어리석었지만
분명히 뜨거웠던.
제멋대로였지만 솔직했던.
사랑을 몰랐기에 가능했던 그 마음.
나는 사랑을 했던 걸까.
아니면
사랑을 연기하며 내 외로움을 달랜 걸까.
욕망은 늘 사랑을 가장한 채 찾아왔고,
사랑은 늘 욕망 뒤에 숨어
수줍게 나를 부숴놓았다.
그날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정확한 이름은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 감정이 끝났음에도
내 안 어딘가는 여전히
그 이름 모를 마음을 껴안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