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길은
늘 너무 멀었다.
배우. 작가.
이름만으로도 문장이 되는 사람들.
나는 그들이 걷는 삶의 결을 흠모했고,
그 세계의 빛나는 언어와 이미지에
조용히, 그러나 매일 질투했다.
꿈은 항상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을 때가 가장 반짝였다.
말하자니 너무 크고,
말하지 않자니 너무 아픈 것.
그건 마치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메아리 한 번 돌아오지 않는 허공 같았다.
지르고, 지르고,
목이 쉬도록 지르고 나면
돌아오는 건 조용한 방과 침묵뿐.
그래서 나는 다른 문을 열었다.
어쩌면 내가 연 게 아니라,
삶이 슬쩍 열어준 문이었다.
그리고 그 문을 지나니
예상하지 못했던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디자이너.
대표.
엄마.
아내.
이 모든 단어는
내가 스무 살 무렵 꿈꾸던 삶에는 없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이름들로 불리고,
그 역할들로 하루를 살아낸다.
내 옆에는
하루 종일 나를 웃게 하기도,
가끔은 침묵하게도 만드는
남편이 늘 곁에 있고,
예쁜 두 아이는
햇살처럼
나를 꼭 잡는다.
나는 몰랐다.
내가 회사 대표로 살게 될 줄,
사람들에게 급여를 주는 사람이 될 줄,
한 달 장부를 보며 안도하게 될 줄.
또, 밥 냄새가 나는 저녁을 지켜내는 사람이 될 줄.
이 삶은
내가 바라던 삶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삶이
나에게 가장 맞는 삶이 아니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그때 원하던 배우나 작가의 길을 택했다면?
지금의 소중하고 귀한 것을 만날 수 없다면 아찔하다.
아마 나는 지금보다 덜 웃고,
덜 사랑하고,
덜 열심히 살았을지도 모른다.
꿈꾸는 일과 살아내는 일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나는 이제
삶 앞에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꿈을 멈춘 것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나를 키우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다만, 그 방향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삶이 손을 잡고 이끌어준 것.
삶은
내게 가장 맞는 시간표와,
가장 견딜 수 있는 속도로
최상의 길을 건네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믿는다.
때로는
내가 원하는 삶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이
더 귀한 것이라는 걸.
나는 지금
그 삶을 살고 있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