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족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그 단순한 마음 하나로 버텼던 날들이 있었다. 부모님에게는 든든한 딸로, 아이들에게는 믿음직한 엄마로, 남편에게는 함께 기대어 설 수 있는 사람으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그 마음이 때로는 나를 더 약하게 만들었다는 걸.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다짐은 언제부턴가 ‘무너지면 안 된다, 견뎌야 한다’는 강박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가장 큰 짐은 나였던 걸까.
가끔은 그랬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속이 텅 비어 있는데도 웃음을 띠며 밥을 차리고, 아이 숙제를 봐주고,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내가 흔들리면 안 된다고, 내 기분이 가족의 하루를 무겁게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렇게 애를 쓰면 쓸수록 가족들은 더 나를 걱정했다. “엄마, 요즘 피곤해 보여.” “괜찮아?” “널 보면 내가 다 힘이 들어. 밥 좀 잘 챙겨 먹고, 기운 내.”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목이 멨다. 내가 가족을 지탱한다고 믿었는데, 정작 그들이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역시, 나는 그들에게 힘이 아니라 짐이 되고 있었던 걸까.
가족은 그런 존재다. 내가 지치면 함께 무너지고, 내가 일어서면 함께 일어선다. 그러니 ‘힘이 되어주겠다’는 말은 어쩌면 오만한 말일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의 삶조차 단단히 붙잡지 못하면서, 어떻게 누군가를 이끌 수 있을까.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누군가를 위해 산다는 건, 결국 나를 지키는 일부터 시작된다는 걸 이제야 안다. 내가 스스로 서 있지 않으면, 결국 그들에게도 기대게 되고, 그 기대는 또 다른 부담이 된다. 사랑은 나누는 것이지만, 지탱은 나눌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 대신, ‘나를 단단히 하자’는 다짐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내 마음을 점검하고, 작게라도 나를 챙긴다. 아이의 웃음을 위해서도, 부모님의 평안을 위해서도, 내 삶의 중심이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가족들에게 무언가를 해주려 하기보다, 내 삶을 잘 살아내려 한다.
어쩌면 진짜 ‘힘이 된다’는 건, 내게 조금은 기대고 싶은 건강한 안심을 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내 삶을 잘 살아가고 있을 때, 그들은 나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이자 안정감이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힘이 되어야 한다’는 말로 나를 다그치지 않으려 한다. 대신 ‘짐이 되지 않겠다’는 말로 내 마음을 다잡는다. 그건 도망이 아니라 책임의 다른 형태. 무거운 세상 속에서도 나 하나는 똑바로 서 있겠다는 약속. 그 작은 결심 하나가 가족에게는 등불이 된다.
힘이 되려 애쓰지 않고, 짐이 되지 않으려 애쓴다. 그 차이는 얼마나 큰 걸까.